[앎-識]/위빠사나(명상)

고엔카 - 당신의 가르침은 소승인가 대승인가?

그러한 2008. 5. 17. 13:59

 

질문; 당신이 “마음”이라고 할 때 나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마음을 발견할 수 없다.

대답; 마음은 어디든지 있다. 당신이 무엇을 느끼는 곳마다 마음은 거기에 있다. 마음은 느낀다.

질문; 그러면 마음이란 뇌를 의미하지 않는가?

대답; 아니다. 서구에서는 마음은 오직 머리에 있다고 생각하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질문; 마음은 몸 전체에 있는가?

대답; 그렇다. 마음은 몸 전체에 있다.

질문; 부정적 의미에서만 “나(I)”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긍정적 측면은 없는가?

기쁨, 평화, 환희 등을 느끼는 개인적 경험이 있지 않는가?

대답; 수행을 통해서 모든 감각적 쾌락은 무상하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들은 왔다가는 금방 사라진다. 만약 이 “나(I)”가 실재로 그것들을 즐긴다면, 만약 그것들이 “나의(my)” 쾌락이라면, 그 때 “나(I)”는 그것들을 지배하는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냥 일어났다가 사라져 버린다. 이때 “나(I)”는 어디에 있는가?

 

질문; 말하고 싶었던 바는 감각적 쾌락이 아니라, 보다 깊은 심층적 측면에서 한 이야기이다.

대답; 그런 수준이라면 “나(I)”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그런 수준에 이를 때 자아는 사라진다. 오직 기쁨이 있은 뿐이다. “나”의 문제는 이제 일어나지 않는다.

 

질문; “나(I)” 대신 개인적 경험에 관해 이야기해 달라.

대답; 느낌 자체를 느끼는 자는 없다. 무엇이 일어난다. 이것이 전부이다. 지금 당신에게는 느낌을 느끼는 자, “나”가 있어야만 할 것 같지만 당신에 계속 수행을 해 간다면 당신은 자아가 사라지는 단계에 도달할 것이다. 그 때 당신의 의문은 사라진다.

 

질문; 당신의 가르침은 소승인가 대승인가?

대답; 어느 쪽도 아니다. 승(乘,yana)이란 낱말은 실제로 당신을 마지막 목적지로 데리고 갈 수송 수단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 잘못되어 교파적 의미로 함축되어 버렸다. 붓다는 결코 교파적인 무엇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는 보편적 법(法, dhamma)을 가르쳤다. 이 보편성이 힌두교도인 나를 붓다의 가르침에로 이끌어 들였다. 이것은 내게 기쁨을 주었다. 이제 이 보편적인 성격을 지닌 법(法)을 나의 온전한 사랑과 자비로써 모든 이들에게 권하는 바이다. 법은 대승도 소승도 아니다. 어떠한 교파에도 속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