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이끄는대로 간다
오래된 선화(禪話) 한 토막.
서로 경쟁관계인 두 개의 절이 있었다.
각 절의 주지승-소위 말하는 주지에 다름아닌- 들은 상대 절의 주지와 앙숙이었다.
그들은 제자들과 신도들에게 상대방 절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말라고 가르쳤다.
각 절에는 어린 동자승이 있었는데,
주지승을 위해 물건을 날라다 주고 심부름을 대신하곤 했다.
각 절의 주지승들은 동자승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저 절의 동자승과 말을 해서는 안된다. 저들은 아주 위험한 무리들이니라.”
하지만 아이들은 아이들일 뿐이다.
어느날, 두 동자승이 길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첫 번째 절의 동자승이 다른 절의 동자승에게 물었다.
“어디를 가니?”
“바람이 이끄는대로 가지.”
절에서 소위 말하는 큰스님들의 선 담화를 많이 들어본 두 번째 동자승의 대답이었다.
‘바람이 이끄는대로’ 간다! 지극히 아름답고 순수한 선 사상의 정수!
첫 번째 절의 동자승은 그만 난감하고 모욕스러웠지만, 달리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실망감과 함께 화가 났다.
게다가 스승의 말을 듣지 않고 반대 절의 동자승과 대화를 나누었다는 죄책감에
소년의 기분은 엉망이었다.
“주지스님이 저들과 말도 섞지 말라고 하셨는데,
저들은 정말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이로군.
그리고 저 동자승의 대답, 나를 무시하고 욕보였어.”
동자승은 곧장 주지승에게로 달려가서 방금전에 일어난 일을 고해바쳤다.
“저쪽 절의 사람과 말을 섞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스승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저들은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제가 저쪽 동자승에게 ‘어디로 가느냐?’는 흔한 질문을 했더니,
그 동자승이 ‘바람이 이끄는대로’ 간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저도 그렇고 그 동자승도 그렇고 둘다 시장에 가고 있는 길이었는데 말입니다.
바람이 이끄는대로 간다니, 무슨 대답이 이렇습니까?”
이야기를 다 들은 주지승이 입을 열었다.
“내가 경고하지 않더냐? 그런데도 내 말은 듣지 않고…
내일, 다시 그 동자승을 만난 바로 그 자리로 가거라.
동자승을 만나거든 이렇게 물어라. ‘어디로 가느냐?’
분명히 ‘바람이 이끄는대로’ 간다고 대답을 하겠지.
그때 너도 좀 더 철학적인 대꾸를 해주면 된다.
이렇게 묻도록 해라. ‘너에게 다리가 없다면, 어떻게 할테냐?’ 영혼은 다리가 없다.
바람은 다리가 없는 영혼을 데려갈 수 없는 법. 어떠냐, 내 말이?”
동자승은 그날밤 내내, 스승이 한 말을 외우고 또 외웠다.
다음날, 아침 일찍 완전무장을 끝낸 동자승은 어제 그 자리,
소년을 만난 바로 그 지점으로 향했다.
정확히 어제와 같은 시간에 두 번째 절의 동자승이 나타났다.
첫 번째 절의 동자승은 진짜 철학이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디를 가니?” 그런 다음 소년은 동자승의 대답을 기다렸다. 바람이…바람이...
상대방 절의 동자승이 입을 열었다.
“시장에 야채를 사러 간다.”
이런 세상에! 밤새도록 준비한 철학적인 대답은 어쩌라고…
삶이 이렇다.
내일의 삶을 준비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삶을 대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이 바로 삶의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삶의 경이로움, 어디로 나를 데려갈지 모르고 어떤 놀라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매순간 그 놀라움을 보게 되리라.
기성복같은 대답이 무용지물임을 알게 되리라.
<오쇼. 기적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