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息]/밑줄 긋기

홀로 있음 속에서

그러한 2008. 4. 29. 14:02

 

 

두 사람 하나의 영혼

 

육체는 영혼 안에 있으므로, 누군가가 그대 가까이 오도록 허락할 때,
그것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대 존재의 일부분이 되게 하는 것과 같다.
사랑의 성스런 관계 속에서 두  영혼은 하나가 된다.
개인을 감싸고 있던 껍질과 장벽에는 수많은 구멍이 생기고,
두 사람은 서로를 채워 준다.


홀로 있음 속에서

 

홀로 있음 속에서 그대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천상의 화가는, 신의 빛과 깊이를 지니고 있지 않은 사람은 이곳으로 보내지 않았다.
그 아름다움은 자주 일상의 무미건조한 모습 뒤에 감춰져 있다.
오직 홀로 있음 속에서만 그대는 자신의 아름다움과 마주할 수 있다.
그대가 무시했던 틈새와 회피하기만 해온 고독의 구석에서 그대는
다른 곳에서 찾아 헤매던 보물을 발견할 것이다.
아름다움은 사람들의 눈길에서 벗어나기를 좋아한다.


영혼의 상처는 흉터를 남기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상처를 갖고 있다.
우리는 그 상처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을 치유해야 한다.
영혼의 상처는 치유 받은 뒤에 흉터를 남기지 않는다.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 본성의 어슴프레한 부분, 직접적이거나 분석적이지 않은 부분에서 기다리는 일이다.
우리는 어느 부분에 상처를 입었는가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하지만, 그 상처를 치유해
자신을 새롭게 하고 하나가 된 모습을 회복하려면 밤의 세계에 있는
더욱 깊은 영혼을 초대해야 한다.
곧바로 다가가지 않고 빙 둘러서, 그리고 친절하게 다가간다면 상처는 치유받을 것이다.
만일 자신의 영혼을 믿을 수 있다면 그대가 필요로 하는 모든 축복을 받을 것이다.


촛불이 꺼질 때 빛은 어디로 가는가

 

이 시대는 경험의 중요성과 가치를 무척 강조한다.
다시 말해 그대가 생각하고, 믿고, 느끼는 것들을 실제로 경험하지 않는다면
그저 환상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경험은 어떤 것의 존재를 증명하고 진실성을 재는 시금석이며,
그것과 가까워지는 유일한 길이다.
하지만 모든 경험의 미래는 사라짐에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매혹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우리의 사라진 날들이 은밀하게 모이는 곳이 있을까?
중세의 한 신비주의자는 이렇게 물었다.
'촛불이 꺼질 때 빛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는 우리의 사라진 날들이 비밀스럽게 모이는 장소가 있다고 믿는다.
그곳의 다른 이름은 '기억'이다.



- 존 오도나휴, <영혼의 동반자>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