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사치를 원하나요?
Q 우리는 왜 사치를 원하나요?
K 어떤 뜻의 사치를 말했습니까?
깨끗한 옷을 입고, 몸을 깨끗이 하고, 좋은 음식을 먹는 것 - 그런 뜻입니까?
굶거나 누더기를 입고 매일 목욕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일이 사치입니다.
따라서 사치란 욕구에 따라 다릅니다. 그것은 정도 문제입니다.
자, 당신은, 당신이 사치를 좋아하고 편안함에 집착하여
항상 소파나 잘 덮인 의자에 앉기를 바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당신 마음이 잠을 자게 됩니다. 육체적인 편안함을 약간 갖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편안함을 강조하거나 그것에 지나친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은,
잠자는 마음을 지니는 일입니다.
당신은 뚱뚱한 대부분의 사람이 얼마나 태평한지 본 일이 있습니까?
두꺼운 지방층에 싸여 신경이 무딥니다.
이는 육체적 조건이지만, 마음에도 지방벽이 쌓입니다.
질문 받거나 방해받기 싫어하는 마음, 그런 마음은 차차로 잠이 듭니다.
우리가 지금 교육이라고 부르는 과정은 학생들을 잠재웁니다.
학생이 아주 예리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면,
선생은 몹시 당황해서 "자, 학과로 돌아갑시다."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어떤 형태의 안락함에 집착한 나머지 버릇이나 믿음을 형성하고,
<내 가정>이라 부르는 한 장소에 정착되면 점점 잠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이런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가 사치스럽게 사느냐 안 사느냐를 묻는 일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아주 활동적이고 깨어 있으며 살펴보는 마음은
안락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사치가 의미 없습니다.
한편 옷이 몇 벌 밖에 없다고 곧 바로 깨어있는 마음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겉으로는 아주 검소하게 사는 승려들도, 내면에선 덕망을 개발하고
하나님이나 진리에 도달하려 애쓰는 등 아주 복잡한 상태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면에서 단순하고 소박해지는 일입니다.
믿음이나 갖가지 욕구들에 막히지 않는 마음을 지니는 일입니다.
그러한 마음만이 진짜로 생각하고 탐색하고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