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한 2008. 5. 13. 14:59

 


강 수면에서 흔들리는 이른 아침의 따뜻한 햇볕을 보고 있으려니,
거기에는 계속되는 명상이 있었다.
조용한 아침, 반짝이면서 춤추는 물 ---
그 광경을 어떠한 의미로 옮기려 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오로지 응시하고 있노라니,
빛 그자체가 명상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소리와 마찬가지로 빛은 헤아릴 수 없는 것임에 틀림없다.
화가가 캔버스 위에 그리려고 하는 빛, 카메라가 포착하려는 빛이 있다.
캄캄한 밤에 켜져있는 등잔불의 빛이 있고,
혹은 또 사람 얼굴 위에 나타나는 빛이 있으며,
그리고 눈의 깊숙한 곳에서 반짝이는 빛이 있다.
눈이 포착한 빛은 수면의 빛이 아니다.
물 위의 빛은 전혀 이질적인 광대한 것으로서 인간의 좁은 시야에는 들어올 수 없다.
그러나 지금 그 빛은 소리와 마찬가지로 제한도 없이 움직여 돌아다니면서
밖으로도 안으로도 바다의 조류처럼 철썩철썩 밀어닥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적막 속에 있노라니 사람은 상상이나 감각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빛과 더불어 무의식중에 시간이란 테두리를 넘어 실려 나갔다.

사랑과 마찬가지로 그 빛의 아름다움은 손으로 만져 보거나 말로 표현하거나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무 그늘에도, 문 바깥에도, 집의 내부에도, 행길 건너편 창문 위에도,
그리고 뛰어놀고 있는 어린이들의 웃음소리 가운데에도 빛은 있었다.
그 빛이 없다면 무엇을 보아도 별 의미가 없다. ---
왜냐하면 그 빛이야말로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명상의 빛이 수면에 걸려 있었다.
빛은 저녁에 다시금 찾아와서 밤이 진행되는 동안 거기에 멈추고,
태양이 숲 위에 모습을 보이면 강은 다시 황금빛으로 물들게 될 것이다.
명상이란 행위의 본디 자세를 비치는 내면의 빛이며,
그와 같이 빛이 없으면 사랑 또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