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자유
명상은 한낱 무엇인가 일상적인 사고나 감정을 초월한 것을 경험하는 것도 아니며,
환상이나 희열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의식이 확대하는 환상을 받아들이거나 무엇인가를 경험하여
그것에 스스로의 제약성이 그림자를 던지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미숙하고 비천한 정신이다.
그런데 세간에서는 그와 같은 미숙한 정신이 큰 성공을 거두어
유명하게 되거나 인기를 얻거나 한다.
그러한 미숙한 인간들이 따르는 도사들도 역시 내실에 있어서는
자기를 따르는 자들과 하등 다를바 없다.
명상은 이와 같은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
그것은 탐구하여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탐구에 골몰하고 있는 자는 어쩌다가 구하던 것을 발견할 지도 모르지만,
그로 인해 얻어지는 위안과 쾌락은 스스로의 공포에 뿌리를 내린
도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념과 도그마에 사로잡힌 사람은
아무리 안달해도 끝내 명상의 영역에 뛰어들 수는 없다.
명상에 잠기기 위해서는 자유로와야 한다.
우선 처음에 명상이 있고 다음에 자유가 찾아드는 것은 아니다.
자유 -- 즉 사회도덕과 그에 따르는 온갖 가치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일 --
야말로 명상이 지닌 최초의 것이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기도를 올리는 따위의 공적인 사항이 아니라,
<다만 혼자서> 언제나 사회적 행동 양식의 테두리를 초월하여 서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는 사고가 만들어 낸 것지만,
사고가 날조하여 제멋대로 진리라고 부르고 있는 것 가운데는 없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사고의 모든 구조를 전적으로 부인하는 일이
명상이 지닌 적극성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