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息]/빈자의 양식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그러한 2008. 6. 26. 14:01

 

  향 수(鄕愁)

                               정지용(鄭芝溶)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초름 휘적시던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