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2월 10일(토) : 카메룬산에서 - 1
2001년 2월 10일(토) : 카메룬산에서
- 흐리다 오후에 갬, 산행(
그 동안 고대해 마지않았던 카메룬산에 오르는 날인만큼 일찍 눈이 떠졌다. 하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어제 차를 오래 탄 때문인지 금방 몸이 일으켜지지 않는다. 한 시간 정도 눈을 뜬 채로 더 누워 있다가 씻지도 않고 숙소를 나섰다.
어느 밤에 왔던 시장 근처까지 걸어 와서 작은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아침 식사로 오믈렛, 차, 빵 반쪽을 먹고 나니 속이 든든해지고, 어제 밤에 느꼈던 배신감(?)도 좀 누그러지는 것 같다. 여기까지 걸어 온 것은 식사 외에 산행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한 목적도 있다. 종업원이 근처에 여행안내소가 있다고 알려주면서 카메룬산에 대한 자랑도 빼놓지 않는다.
여행안내소는 시장 끝에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전에는 정부에서 운영했는데 지금은 민간회사가 독자적으로 관리와 관광객 안내업무 일체를 맡아보고 있었다. 산행코스에 대해서 안내를 받은 후에, 가이드를 대동한 1박2일 코스를 택했다. 부지런히 오르면 하루 만에 정상을 밟고 내려올 수 있지만, 무리하지 않고 풍경도 제대로 즐기려면 1박2일이 적당하다고 한다. 길게는 일주일 동안 산행하는 코스도 있는데, 사람이 거의 닿지 않는 밀림 깊숙이 들어가면 다양한 동식물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가이드 없이는 산행이 아예 허락되지 않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서 짐을 챙긴 후 다시 안내소에 도착하니 벌써 열 시다. 산행비와 이틀간의 가이드비를 합해서 16,000세파나 되는 요금을 먼저 지불했다. 가이드와 함께 근처에 있는 가게로 가서, 산에서 먹을 음식물로 생수, 빵, 정어리 통조림, 초콜렛 등을 구입하는 것으로 산행준비는 대강 끝났다.
드디어 산행이 시작되었다. 산 초입까지는 일단 택시를 타고 갔는데, 가이드나 택시기사나 한 동네 사람이다 보니 요금도 싸게 낼 수 있었다. 카메룬산은 해발 고도가 4,095미터이지만, 대체로 완만하고 바위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어서 오르기에 그리 어렵지는 않다. 체력을 과시하면서 최대한 빨리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올 수도 있고, 위로 올라가면서 다양하게 바뀌는 생태계의 모습을 예민하게 관찰해보는 것도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있다.
처음 올라가는 길은 숲 사이로 나있는 완만한 오솔길을 따라 가는 것이어서 그리 힘들지 않다. 한 시간 정도 걷다가 쉬었는데, 오랜만에 산에 올라서인지 이내 숨이 가빠져서 준비한 초콜렛과 물을 먹으면서 열량을 보충했다. 자주 멈추면 오히려 더 힘들다, 는 가이드의 성화에 5분 정도 머물다가 이내 출발했다. 초콜렛 덕분인지 오기가 발동해서인지 한결 걷기가 쉬워졌다. 산 아래 부분을 차지하는 숲이 끝나는 지점에, 휴식과 캠핑을 위한 장소인 헛 Hut이 그리 넓지는 않지만 짜임새 있게 갖추어져 있었다. 정상까지 가는 동안 이런 곳이 2개 더 있다고 한다. 오늘은 두 번째 헛까지만 가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어느새 점심때가 지난 터라 빵으로 간단히 식사를 하며 잠시 쉬기로 했다. 입구에서 이 곳까지는 그리 깊지 않은 숲이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구간이었다. 그래도 나는 힘들어서 몇 번이나 쉬었는데, 가이드는 슬리퍼를 끌고서 잘도 오른다. 계속 내가 신고 있는 등산화가 좋아보인다는 말을 반복하는 걸 들으니 자격지심(?)에 웬지 비꼬는 듯이 들리기도 했다.
가이드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앉아있는데, 어젯밤 이 곳에서 묵었고 두 번째 헛에 오르는 도중에 내려가는 길이라는 남녀 등산객이 들어섰다. 그들 말로는 밤에 무척 춥다고 하면서 침낭이 없는 나를 걱정해 주었다. 사실 산에 오르기 전에 여행안내소에서도 침낭 없이는 밤에 추워서 견딜 수 없을 거라며 대여하기를 권했었다. 내심 추우면 얼마나 추울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대여비가 좀 비싸기도 해서 그만 두었었는데, 가이드가 지금이라도 그들의 침낭을 받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다. 나도 슬슬 걱정되기 시작하지만, 남들이 쓰던 것이라 개운치 않은 생각이 들어 결국 사양했다. 일찍 올라가면 건물 안에 잠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 테고, 그게 안되면 가이드가 텐트를 가지고 가니까 하룻밤 정도는 어떻게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