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지방 여행 - 2001년 4월 13일(금) : 베르뚜아로
동부지방 여행
공휴일인 聖금요일이 주말과 이어지는 모처럼의 연휴를 맞게 되어, 거리상으로 멀리 있어서 평소에는 가보기 어려운 동부지역을 여행하기로 했다.
카메룬은 이전에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역사로 인해서 프랑스 제도의 영향을 많이 받은 편이다. 공휴일 중에서도 프랑스와 같은 날을 기념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특히 종교축일이 그러하다. 성금요일은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도 기리는 날인데, 어떤 나라에서는 같은 날을 “모든 성인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기념하기도 한다.
동부지역은 카메룬의 대표적인 밀림지역인데, 우거진 숲으로 인해서 가장 발전이 더딘 곳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런 상태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주요 종족인 피그미족이 아직도 밀림에서 그들의 전통생활방식을 고수하고 있는데, 그들로서는 이런 자연환경이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짧은 일정이어서 멀리까지 가보지는 못하고, 동부지역의 중심도시인 베르뚜아와 철도 중간기착지인 벨라보만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2001년 4월 13일(금) : 베르뚜아로
- 많은 비 이후 갬, 베르뚜아(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지금이 계절적으로 소우기에 속하니까 비가 오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그래도 여행을 떠나려는데 오는 비는 반갑지 않다. 집에서 나서 택시를 타고 비 속을 헤쳐 기차역에 도착했다. 정확하지 않은 기차일정을 직접 확인하고 나서 전체적인 여정을 잡아보려는 생각에서이다.
비가 와서인지 시내에서 오는 택시도 몇 대 보이지 않는다. 요금도 조금 아낄 겸 근처에 있는 교차로까지 걸어 나와서 버스회사까지 가는 택시를 잡았다. 보통 요금의 2배인 300세파를 달라고 하는데, 비가 오는데다 한 번 갈아타야 하는 곳인데도 바로 간다고 해서 그냥 타기로 했다.
베르뚜아로 가는 버스회사 - Alliance Voyage – 에 도착해서 차표부터 샀다. 조금 비싼 편인 4,500세파의 요금만으로도, 거리가 멀고 도로도 그리 좋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대충 짐작된다.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이 지역은 야운데 외곽의 음반Mvan이라고 불리는 곳인데, 지방으로 운행하는 많은 버스회사들이 이 곳에 밀집해 있어서 지역 전체가 마치 거대한 버스터미널인 셈이다.
점심으로 먹을 바게뜨를 반쪽만 사고 화장실에도 다녀왔으니 떠날 준비는 마친 셈이다. 화장실 이용 요금으로 25세파를 받는 걸 보니 비교적 양심적(?)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28명이 정원인 버스에 올랐다. 좌석이 딱딱해서 편하지 않고, 운전석과 좌석 첫 열 사이가 철창으로 가로막혀 있어서 호송차 같은 분위기까지 든다. 그래도 전체적인 외형은 튼튼해 보여서, 먼 길을 오가는데 적합하게 만들어진 것 같다.
다시 출발한 차창을 통해 내다보니, 길 옆으로 양파를 심어 놓은 것처럼 보이는 밭도 보인다. 길은 비포장으로 계속 이어지는데, 밀림 깊숙한 곳에서 벌목한 것인지 원목을 실어 나르는 대형차들도 많이 보이기 시작한다. 승객들이 소변을 보기위해 몇 번 멈추기도 하면서 다음에 도착한 곳은 아봉음방Abong-Mbang이다. 몇 명의 승객이 내리고 또 그 만큼의 사람들이 오른 후에 이내 출발하는가 싶더니 또 다시 선다. 이 곳도 휴게소인 듯 한데 승객들이 내려서 몸을 풀기도 하고 건물 뒤쪽으로 가서 소변을 보기도 한다. 나도 소변을 보려고 화장실을 찾으니 직원이 마땅찮은 눈으로 열쇠를 내주며 한 곳을 가리킨다. 문을 따고 들어가니 의외로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는데, 아마 직원들만 이용하는 곳인 것 같다. 어쨌든 어려운 시험문제를 푼 것 같아 마음마저 가뿐하다.
다시 출발해서 양쪽길 옆을 보니, 제법 큰 나무들이 우거져 있어 숲 사이로 어렵게 낸 길임을 알아볼 수 있다. 길을 벗어나 조금만 들어가도 바로 밀림지대라고 생각하니 야릇한 흥분이 몸을 뒤덮는다. 사소한 고장과 소변보는 승객 등을 위해서 멈출 때 빼고는 운행도 순조롭다. 무엇보다 경찰의 검문때문에 지연되는 일이 없어서 좋은데, 외진 곳이라서 경찰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옆 자리에 앉은 군인복장의 여자가 소변을 보고 늦게 오는 바람에 모두가 기다리다가 한마디씩 한 것이 소란이라면 소란이었다.
어떤 마을에서는 종교행사라도 하는 것인지, 많은 주민들이 마을을 행진하는 모습도 보인다. 예수의 부활을 기리는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을 맨 앞에 내세우고 걸어가는 모습이 자못 엄숙하게 느껴진다. 작업하는 대형차량들이 많이 보이는 것으로 봐서, 도로는 기존에 있던 것을 새로 정비하고 있다. 도로확충이 주민들의 생활편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아까 보았던 것처럼 원목을 실어 나르기 위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최소한도로 적정한 만큼의 발전이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인데 이미 숲이 많이 깎여나간 모습이 안타깝다.
자주 버스가 서고, 두어 명씩 내리는 사람들은 있는데 더 이상 타는 사람은 없는 것을 보니 거의 다 온 듯 하다. 어느새 날도 저물어 가는지 해가 서쪽으로 한껏 기울었다. 지금까지의 비포장도로가 끝나고 포장된 도로가 시작되는가 싶더니 이내 베르뚜아 시내로 성큼 들어섰다. 시내 중앙에 있는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미리 생각해 둔 호텔은 근처에 있다고 한다. 걸어서 찾아간 호텔에 들어서니 다리가 약간 불편해 보이는 아주머니가 친절히 맞아준다. 낡은 건물이지만 방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고 선풍기도 비치되어 있다. 더구나 1,000세파를 깎아서 들어왔으니 이 정도면 하룻밤 지내기에도 감지덕지인 셈이다.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인지 배가 몹시 고프다. 제대로 된 식당에서 근사한 저녁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밖으로 나왔지만 근처에는 식당이 보이지 않는다. 조금 떨어진 곳까지 걸어가면 있다고는 하는데 밤길이라서 자연히 조심하게 된다. 마침 거리에서 구워 파는 닭이 맛있게 보여서 한 마리를 사고, 근처에 있는 바로 들어가 구운 쁠랑땡과 맥주를 시켜서 저녁으로 대신했다. 장작불 위에서 돌려가며 구워서인지 기름은 거의 빠진 담백한 고기맛이 일품이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생수를 사면서 보니, 물건값이 야운데에 비해서 대체로 비싼 편이다. 아마 지역적으로 낙후된 곳이라서 수송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물건들이 귀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방으로 와서 씻고, 쉬면서 책을 좀 보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