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럽공원에서 - 2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다시 일어나서 제법 넓은 폭의 개울을 따라 오른쪽으로 계속 걸어갔다. 개울물은 맑고 제법 차가운데, 호도 씨는 마시려고 그러는지 빈 물병에 물을 담는다. 조금 더 걸어가니 폭포로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그 쪽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난데없이 큰 통나무로 만든 외다리가 나온다. 그리 길지는 않지만 아래에는 물이 제법 흐르고 바위도 많이 보여 위험해 보인다. 호도 씨는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뒤도 돌아보지않고 건너가버린다. 하는 수 없이 따라 건넜는데 한참동안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번에는 마나강을 왼쪽에 두고 기슭을 따라 계속 걸어갔다. 마치 박같이 생긴 열매가 나무의 몸체에 바로 매달려 있어서 신기하다고 했더니 그 열매로 전통악기를 만든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전통춤을 출 때 무릎에 매달고 흔들면 소리가 나던 것이 바로 저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악기에서는 속을 비우고 현악기의 줄에 붙여서 공명통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강 기슭의 바위 위에 앉아 물소리를 들으며 잠시 쉬었다. 야운데에는 근처에 강이나 바다가 없어서 물을 보기가 힘든데, 마치 우리나라의 어느 계곡에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다시 온 길을 되짚어 가니 문제의 통나무 다리가 기다리고 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올라섰는데 거의 미끄러질 번했다. 습기가 많아서 이끼가 낀 것을 모르고 밟았던 것이다. 어쨌든 조심조심 다리를 건너고 나니 뒤쪽은 다시 돌아보고 싶지 않다.
얼마 더 걷다가 다시 강기슭의 바위 위에 앉아서 쉬었다. 문뎀바에는 약 2,000명 정도의 주민들이 산다고 하는데, 나이지리아인들도 다수 있다고 한다. 사실 국경지대의 일부 영토는 영국의 통치라는 역사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나이지리아에 편입되었다. 국경이 그어지기 전부터 그들은 형제였고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한다. 이들에게는 국적보다 같은 종족이라는 것이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사무소로에 가는 길에 치마처럼 보이는 옷을 걸친 할아버지를 봤는데 나이지리아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입구로 돌아오니 오전에 올 때보다 강물이 더 불어나 있다. 차는 한 시간 정도 지나야 올 예정이어서, 그 동안은 강물 옆에 있는 바위에 앉아서 쉬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오랜 세월 동안 강물에 깎여서인지 바위들의 모서리부분이 둥글게 길들여져 있다. 호도 씨는 아예 옷을 모두 벗고 멱을 감는데 내 몸조차 시원하게 느껴진다. 가만히 앉아 있으니 한가로워서 좋은데 이내 방해하는 녀석들이 있다. 무뚜무뚜가 피를 빨려고 다리에 달라 붙는 바람에 쫓느라고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다. 공원 안에서도 무척 많았는데, 잠시만 멈춰서도 이내 팔다리에 까맣게 달라붙기 때문에 가급적 긴 옷을 입는 것이 좋다.
차를 타기 위해 위로 올라와서 기다리는 동안 호도 씨에게 감사의 표시로 1,000세파를 주니까 무척 좋아한다. 다음에 또 오게 되면 꼭 자기가 다시 안내해 주겠다고 한다. 차를 기다리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니,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마나강에 예전에는 다리가 놓여있었던 흔적이 보인다. 영국 왕실의 찰스 황태자의 이름이 새겨진 준공기념비도 볼 수 있는데, 아마 파손된 후에는 다시 복구되지 않은 것 같다.
차를 타고 사무실로 와서 짐을 챙긴 다음, 다른 호텔을 안내 받았다. 그 호텔까지 차를 태워줘서 들어가 보니, 그 지역 전체가 한달 째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상태라고 한다. 하는 수 없이 한 번 더 부탁해서 차를 얻어 타고 어제 묵었던 호텔로 돌아갔다. 마을에는 택시 같은 교통수단이 따로 있지 않은데, 웬만한 거리도 대부분 걸어다니기 때문이다.
마치 돌아온 탕자라도 맞는 듯 직원이 무척 반가와한다. 하룻밤의 인연(?)은 역시 대단한 것이어서, 방도 더 좋은 곳으로 내주고 요금도 1,000세파나 선뜻 깎아준다. 미리 돈을 지불해야 그 돈으로 재료를 사서 음식을 준비할 수 있다고 해서 2,000세파를 주고 미리 저녁식사를 주문했다. 한 시간정도 걸린다고 하니 그 사이에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주변산책에 나섰다.
근처에 있는 마을은 저녁 무렵이라서인지 더 한가하게 느껴진다. 길에서 노는 아이들, 일터에서 돌아오는 어른들, 군부대로 보이는 곳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군인들까지도 너무 착해보인다. 아이들은 돌아가고 텅 빈 학교를 들여다보니 책걸상이 없는 교실도 많이 눈에 띈다. 교실 안에 칠판과 알림판인 듯, 검은 색으로 페인트칠해 둔 벽이 가슴을 찡하게 한다. 이런 환경에서나마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단지 부를 더 많이 축적하기 위한 방편으로서가 아니라 개개인의 조화로운 삶을 지향하는 본질적인 교육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호텔로 돌아와 맥주를 곁들여 식사를 하고 샤워까지 하고나니 하루를 온전히 잘 보냈다는 느낌이 든다. 약간 선선한 것 같은데 담요가 보이지 않는다. 직원을 불렀지만 대답이 없어서 창고인 듯한 곳에 가서 그냥 집어왔다. 갑자기 하늘을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당에 나가서 위를 올려다보니, 별들이 그야말로 금방이라도 쏟아질듯하다. 하늘은 지붕이고 별은 지붕에 난 구멍이라고 여긴다는 집시들처럼, 매일 하늘의 별을 보며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다시 방으로 들어와서 잠시 책을 보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천정에 쥐라도 있는 것인지 가끔씩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뒤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