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운데로 - 2
소디방가So-dibanga에서는, 아이들이 병마개 편 것을 줄에 감아 돌리면서 놀고 있는 것이 보이는데, 어떤 아이들은 목걸이처럼 걸고 있기도 한다. 어릴 때 내가 가지고 놀던 것들이어서 눈에 쉽게 잡히는 것이리라.
메손도Messondo를 지날 즈음에는 뒷자리 승객들의 술판이 거의 잔치 수준으로 발전했다. 카메룬 사람들이 술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주정하는 것은 본 일이 없어서 신기하기도 하다. 기차는 계속 달려서 은도그베솔Ndog bessol, 히코아말렙Hikoa-malep을 지나서 에세카Eseka에 도착했다. 언뜻 보기에도 꽤 큰 규모의 마을이다. 바나나 4개를 50세파에 샀다.
뒷자리 승객들은 흥이 최고조에 달한 것인지, 이제 춤, 노래, 맥주판이 어우러져 있다. 상당히 긴 터널과 짧은 터널 둘을 연이어 통과하니까 바로 멘로말룸Menloh-Maloume이 나온다. 마칵Makak에 도착할 때까지, 아까 젊은 여자의 장바구니를 챙겨주던 앞자리의 인상 좋은 남자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야운데에 있는 한국자동차 수입회사에 근무한 적이 있어서 한국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지금은 영화감독을 꿈꾸고 있다고 하는데 눈빛이 맑아보인다. 야운데 근교인 은구무Ngoumou와 음발마요 사이에 하루 네차례 기차가 오가는데, 일명 ‘기차택시’라고 부른다는 좋은 정보도 알려주었다.
다섯시가 지나 민카Minka, 이어서 몸Mom을 통과했다. 기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렸다가 무임승차하는 젊은 남자들도 가끔 보이는데, 승객들이나 직원들이 그리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지는 않다. 옆 자리에 앉은 남자는, 앞 자리에 여자승객들이 앉을 때마다 연락처 – 주소 혹은 전화번호? - 를 받아내는 놀라운 재주를 가지고 있다. 여자들이 내릴 때는 입구까지 전송하는 예의를 갖추는 데는 가히 직업적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어쩌다가 남자들이 앞자리에 앉으면 별로 관심이 없는지 차라리 잠을 택하는 듯 하다.
오텔레Otelé를 지나 은구무에 도착했다. 야운데까지는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인데 한참이 지나도 다시 출발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10분쯤 지나니까 전방에서 열차전복사고가 생겨서 지연되고 있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그제서야 승객들은 밖으로 나와서 바람을 쐬며 기다렸다. 밖에서 보니 열차는 1등칸 1량, 2등칸 3량, 화물칸 1량으로 연결되어 있다.
시간은 흘러 여섯시를 넘었고 날도 어두워지고 있다. 사고만 아니었다면 이미 야운데에 도착했을 시간이다. 다시 움직일 모양인지 직원들이 모두 차에 오르라고 한다. 우선 사고지점 인근역까지 기차로 가고, 걸어서 사고지점을 통과한 다음, 다른 기차로 갈아타서 야운데로 간다고 방송으로 알려주었다. 이 곳에서 야운데로 가는 교통편은 기차 외에는 없는지라 승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방송으로 안내라도 해 주니 고마울 따름이라고 했더니, 그러면 걸어서 가려고 했냐며 직원이 농담으로 답한다.
천천히 움직이는 차 안에서 보니까 도로확장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언제부터인가 조용하다 싶었는데, 뒷자리의 소란스럽던 승객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아마 은구무에서 모두 내린듯한데 부럽기만 하다. 저녁 무렵의 숲은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데 마치 과묵한 거인을 대하는 느낌이다.
문득 여행은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를 타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은 무사히 땅에 내려질 테지만 공중에 떠있는 동안에는 긴장과 두려움으로 몸을 떨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공중에 떠있는 순간을 즐기지 못하면 내려온 다음에 반드시 후회하게 될 테니, 긴장과 두려움은 오히려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이번 여행은 거의 헐리우드 액션영화 수준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빈두엘라Binguela에 열차가 �췄다. 그 사이에 다시 기차가 아니라 버스가 우리를 태우고 갈 것이라는 방송이 있었지만, 열차에서 내렸을 때는 그 어디에도 우리를 태우고 갈 버스는 보이지 않는다. 이 곳은 야운데에서 5Km 정도 떨어진 작은 역인데, 평소에는 기차가 서지 않는지 전기불도 켜있지 않다. 다시 열차에 올랐지만 아무런 안내방송도 나오지않아 답답하기만 하다. 다시 내려 대합실로 가서 벽에 기대고 앉았다. 여기저기 짐보따리가 널려 있고, 그 사이에 앉거나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까 피난민들이 따로 없다.
누군가가 저쪽에 버스가 와있다는 말을 했던 것 같다. 섣불리 움직였다가 낭패를 당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다들 머뭇거리는 사이에 한두 사람씩 그 쪽으로 움직인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불빛도 없는 철길을 한참 걸어가서 보니, 여러 대의 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근처에 모여있다. 왜 안내가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승객들이 항의하니까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라고 한다. 저마다 큰 소리로 한마디씩 하는 통에 더 정신이 없다. 이런 사고에 대처하는 체계가 갖추어져 있지 않은 가운데, 시행착오의 과정 안에 우리가 놓여있는 것이다. 하지만 평소에 보아오던 것에 비해서 이 정도나마 조치가 취해지는 것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밀고 밀리는 가운데 겨우 첫 번째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좌석은 이미 다 찼고 통로에 보조의자를 이용해서 앉았다가, 될수록 많은 사람들을 태워야 했기 때문에 다시 일어섰다. 모든 버스에 승객이 다 찼는데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출발하지 않으니까 승객들이 또 항의한다. 운전사와 승객들 사이에 몇 차례 입씨름이 오가고 나서 드디어 차가 움직인다.
우리가 타고 있는 버스가 제일 뒤에 가게 되니까 승객들이 야유를 퍼붓는데,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고 마침내 다시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이 더 큰 것 같다. 버스는 한국의 고속버스 수준으로 쾌적한 것이었는데, 지금까지 카메룬에서 이런 차를 보는 것은 처음이다. 기다리면서 고생했던 것은 다들 잊었는지 마치 수학여행가는 학생들처럼 어느 정도 들떠있다.
8시 반쯤에 야운데에 들어섰고, 음반을 지나 마침내 기차역에 도착했다. 버스로 세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를 7시간도 더 걸려서 돌아온 장고의 길이었지만, 무사히 오고 나니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될 것도 같다.
택시를 타고 집 근처까지 와서, 평소에 가보고 싶었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망설였던 중국식당 - China Town - 에 들어섰다. 이 곳에서 파는 우동처럼 요리한 면이 맛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여행에서 무사히 돌아온 것을 자축도 할 겸 먹어보려는 것이다. 역시 들은 대로 담백한 국물이 내 입맛에도 맞다. 집 근처이니 만큼 맥주를 한 잔 해도 걱정이 되지 않는다.
집에 도착하니 벌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