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지방 여행 - 2001년 5년 19일(토) : 크리비로 - 1
남부지방 여행
국가통합기념일 휴무를 이용해서 오래 전부터 계획했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남부지방 여행을 실행하게 되었다. 올해는 일요일과 겹쳐서 월요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어 연휴가 되었기 때문에 감히 여행을 떠나려는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것이다.
카메룬은 15세기 말엽 포르투갈인에 의해서 처음으로 서구에 알려진 후로 계속해서 외세의 간섭에 시달리다가
2001년 5년 19일(토) : 크리비로
- 맑음, 크리비(
9시쯤에 집에서 나섰다. 크리비로 가려면 음반 구역에 있는 버스회사 - Kribienne Voyage – 의 차를 이용하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고 한다. 시내 외곽이라서 택시비로 350세파를 지불해야 했지만, 이번에는 갈아타지 않고 바로 갈 수 있어서 좋았다. 곧 바로 3,500세파를 내고 표부터 사서 차에 올랐다. 10시쯤에 출발할 예정이니까 아직 30분 이상 남아 있지만, 일찍 좋은(?) 자리를 잡아 두지 않으면 몇 시간의 고생길이 되기 쉽다. 벌써 많은 좌석이 가방, 손수건, 심지어 버스표 등 각자의 소지품으로 예약되어 있어서, 간신히 통로측 자리를 하나 잡을 수 있었다.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앉아 있으려니 백인 남자 세 명이 차에 오르는 것이 보인다. 팔뚝과 몸에 천연색으로 문신을 한 모습이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데, 현지인들도 그런 모양인지 신기한 눈으로 보고 있다. 독일인들이라고 하는데, 2주 일정으로 여행을 와서 보니 승용차 예약이 잘 되지 않아서 버스를 타게 되었다고 한다. 경위야 어찌되었건 여행을 제대로 하게 된 것을 축하한다고 말해 주었더니 동의한단다. 편안한 승용차를 자기들끼리만 타고 다니면서, 게다가 운전에까지 신경을 쓰면서는 도대체 무엇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크리비는 대서양에 접한 휴양도시인데, 길게 이어진 부드러운 모래사장의 해변이 아름답고 물도 깨끗해서 유럽인들이 카메룬에서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이국적인 정취를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한 이 나라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점이 큰 이유인 것 같다.
모든 좌석을 다 채우고 10시 반쯤에 드디어 출발하는가 싶더니 다시 기름을 채우기 위해 정차한다. 옆자리의 여자 승객이 껌 하나를 주길래 나도 사탕 2개를 건네주었다. 차는 24인승 미니버스인데 깨끗하고 튼튼해 보이지만, 네 명이 정원인 한 열에 다섯 명씩 앉도록 했기 때문에 좀 불편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상당히 양호한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스피커를 통해 요란하게 나오는 마코사 음악을 들으면서 여행은 계속되었다.
중간에 도로 이용료를 징수하는 곳(Péage)을 지나고, 운전사가 소변을 보기 위해서 차를 세우기도 했다. 어제 잠을 설쳐서인지 계속 졸면서 가고있는데, 누군가 두알라와 에데아 사이의 거리가 65Km라고 하는 말이 들린다. 야운데와 두알라 사이의 거리가 240Km이니까,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에데아는 두알라 쪽에 훨씬 더 가깝다.
잘 닦여진 도로 위를 버스는 별 탈 없이 계속 달리고 있다. 그 동안에 경찰 검문이 두어 번 있었고 한두 군데 승객들을 내려 놓기도 했다. 어느 곳에서는 승객이 차 안에서 큰소리로 부르니까, 반가운 사람인 듯 한 여인이 집에서 맨발로 뛰어 나오는 모습이 정겹게 보였다.
두시간 정도 지나서 에데아에 도착하기 조금 전에, 크리비로 꺾어지는 도로로 접어들었다. 차 안에는 쉬지도 않고 계속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옆자리와 앞자리의 여인들을 보니 숫제 음악에 맞춰서 계속 앞뒤로 고개운동을 하고 있다.
도로는 최근에 포장이라도 했는지, 차선도 선명하게 그려져 있고 깨끗해 보인다. 길 양쪽으로는 팜나무 플랜테이션 농장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냥 보기에는 한없이 낭만적으로 보이는 저 곳이 식민지 수탈의 대표적인 자취라고 생각하니, 현상의 이면에 가려져 있는 본질을 얼마나 꿰뚫어 보며 살아가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대나무도 많이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아늑한 숲과는 좀 달라 보인다. 비가 많이 오는 기후 때문일 텐데, 여러 개의 굵은 가지가 한데 뭉쳐 위로 뻗어 있어서 전체적으로는 마치 수양버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른 지역에서 본 것과는 별로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가끔 운전사가 엉거주춤 서서 운전하기도 했는데 왜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다.
거의 다 왔는지 집들이 드문 보이더니 차가 멈춘다. 승객 한 사람이 내리니까 개가 먼저 알아보고 마중 나오듯 반갑게 달려든다. 조금 더 달려가니 아늑해 보이는 바다가 건물 사이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다. 다 왔구나 싶어서 느긋하게 앉아있는데, 차가 멈추더니 경찰이 총을 들고 차에 올라와 신분증을 요구하며 검문을 한다. 처음의 기세와는 달리 자세히 검사하지는 않는 걸로 봐서, 도시에 들어서기 전에 의례적으로 하는 일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