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食]/새우의 강

2001년 5월 20일(일) : 에볼로바로

그러한 2008. 7. 12. 12:52

 

2001 5 20() : 에볼로바로

 

- 맑음, 에볼로바(8:00, 버스, 택시), 경비 10,900세파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 복도에서 들리는 사람 소리 때문에 잠을 설쳐서인지, 잠은 깼지만 몸을 일으키기가 쉽지않다. 한 시간 정도 더 누워있다가 식사도 할 겸 산책에 나섰다.

아이나 어른이나 모두 깨끗하게 차려 입고 어디론가 부지런히 가고 있는데, 아마 기념식이 열리는 공회당으로 모이기로 되어있는 것 같다. 큰길은 복잡하던 어제 밤과는 달리 한산하기조차 하다. 아침식사로 숙소 근처의 간이식당에서 오믈렛, , 커피를 주문했다. 어디에 가더라도 저렴한 가격에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이런 곳이 있어줘서 무척 다행이다.

숙소로 와서 씻고 짐을 챙기고 나니 벌써 9 넘었다. 팁으로 100세파를 두고 숙소를 나와, 걸어서 정류장으로 갔다. 에볼로바까지는 두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아무리 길이 나쁘다고 하지만 3,500세파나 하는 버스비는 좀 비싸 보인다. 이제 다섯 사람이 표를 샀다고 하니 앞으로도 한참 동안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옆에서 다른 버스를 기다리는 할머니는, 자루에 담아온 애완용 고양이의 발톱이나 털을 계속 만져주고 음식을 직접 먹여주기도 하는 등 몹시도 애지중지하고 있다. 어떤 버스는 모든 창이 베니어합판으로 덮여있는데다가 차체도 무척 낡아서 가다가 멈추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싶을 정도이다. 주위를 서성거리다 하릴없이 소야를 하나 사먹어 본다. 어디서나 맛이 그리 차이가 나지 않고 가격도 100세파이다.

어느새 정오가 지났는데 차는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목도 마르고 무료함도 쫓을 겸, 작은 가게로 들어가서 콜라 한 병을 사 마셔도 본다. 차는 18명이 다 차야 출발한다는데 이제 반 조금 넘는 사람들이 표를 샀다.

2에 차 안에 들어가 앉았지만 아직 출발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내 기분과는 상관없이 바깥은 말 그대로 축제분위기가 만연하다. 아이들은 과자를, 어른들은 맥주를 손에서 놓지않기로 약속이라도 한 것 같다.

 

차가 움직이더니 어느 집에 들렀다가, 기름을 채우고 정류장으로 다시 돌아 와서는 드디어 출발이다. 버스를 한번 타려고 5시간을 기다린 것은 기록이다. 어느 승객의 집에 들러 짐을 싣고는 곧 바로 비포장으로 뻗어있는 도로로 접어들었다.

처음 한 시간 정도는 비포장이나마 도로상태가 좋았는데, 그 후부터는 정비가 잘 되어있지 않아서 차가 많이 흔들린다. 길 옆으로는 대나무가 웅장한 규모로 펼쳐있고, 가끔씩 피그미족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보인다. 차편이 귀한 지역이어서인지, 수시로 정차, 출발을 반복하면서 승객들을 태우는 바람에 진행은 무척 더디다.

두 시간 정도 더 달려가니, 누군가가 에볼로바까지는 이제 20여분 남았다고 한다. 하지만 에볼로바는 나오지 않고, 5 차가 선 곳은 아콤2Akom2라는 곳이었다. 이유는 잘 모르는 채 승객들은 차 밖으로 나왔고, 배가 고프던 참이라 삶은 옥수수를 하나 사먹으니 맛은 좋다.

십여 분 후에 다시 움직이는 차 안에서 보니, 원형의 큰 회전손잡이가 달린 우물이 눈에 들어온다. 이번에는 누군가가 70Km 정도 남았다고 하는데 이제는 믿어지지도 않는다. 집들마다 지붕을 돌아가며 큰 물받이 홈이 설치되어 있는데, 빗물을 받아두었다가 이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물이 귀하다 보니 이런 방편을 고안한 것이리라.

6가 조금 못 되어 알룸2Aloum 2에 차가 서더니, 더 이상 가지 않으니까 택시로 갈아타라고 한다. 미리 예정된 것인지 택시가 서있기는 한데 운전사는 보이지 않는다. 버스는 이미 가버렸으니 운전사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에볼로바까지는 아직 60Km 정도가 남았다는데 날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다. 마을 아이들이 축구하는 것을 보다가 사탕을 하나씩 나누어 주니까 좋아라 한다. 근처에 있던 어른들도 사탕을 달라고 하기에 아이들만 먹는 것이라고 했더니, 자기도 아이라면서 보채는(?) 모습이 어쩌면 순박하게도 보인다.

 

7시쯤에 운전사가 왔고 몇 사람을 더 태우고 나서 택시는 출발했다. 알고 보니 이 지역 종족의 장 쁘레지당président - 이 명절을 맞이해서 작은 마을을 관할하는 부하 쉐프chef - 들에게 내려주는 옷감을 전달하는 차편을 같이 타게 된 것이다.

얼마 가지 않아서 또 다른 마을에 차가 섰고, 여러 사람들이 서둘러 옷감을 내린다. 어떻게 이렇게 사람들이 많아졌나 했더니 택시 지붕과 양쪽에 거의 매달려서 같이 타고 온 것이다. 이번에는 우리 일행도 같이 내려서, 족장의 부하인 듯한 사람이 마을에 들어가서 하사품을 전달하는 의식을 지켜보았다. 마을의 유지인 듯한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쉐프가 쁘레지당에게 전하는 감사의 말을 건넨다. 음료수를 한 잔씩 마시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략 30분 정도 걸리는데 이 마을이 마지막이라니 다행이다 싶다.

다시 택시는 출발했고, 얼마 있다가 여자승객이 내리고, 차를 점검하기 위해서 멈추고, 작은 주유소에서 기름을 사서 채웠다. 한참을 잘 달린다 싶더니 어느 집으로 올라가는 언덕에서 차가 멈춘다. 벌써 9 지나서 마음은 점점 초조해지는데, 쁘레지당의 집에 들렀다가 간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주위에 반딧불이가 많이 날아다니는 길을 따라 올라가 집에 들어서니, 마치 잔칫집인 양 북적거린다.

집 안에 들어가서 쁘레지당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음식이 나온다. 고등어, 바똥 등이 담겨 있는데, 별로 생각이 없는데도 자꾸 권하는 바람에 난처했다. 특별히 주는 것이라며 흙이 가라앉아 있는 수돗물을 한 병 주기도 했는데, 나올 때 모른 척하고 두고 나오면서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너무 친절하게 대해주니 잠시나마 긴장을 풀 수 있었다.

마침 다른 가족이 생활하는 집이 바로 앞에 있어서 둘러보았다. 바닥은 흙으로 되어 있고, 한 칸 안에서 전 가족이 침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그런 환경에서 그토록 행복한 표정과 웃음을 짓고 있으니, 나보다 영성이 훨씬 뛰어난 사람들임이 틀림없다.

 

집을 나와서 40분 정도 달려 10 에볼로바에 도착했다. 자신을 의사라고 소개한 남자가 운전사에게, 내가 묵을 호텔까지 태워주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호텔이라고는 하지만 3,000세파에 묵을 수 있는 작은 곳이다. 방은 그런대로 깨끗한데, 나방이 굉장히 많이 날아다니고 열쇠는 없다. 배가 고파서 배낭은 프런트에 맡기고 밖으로 나왔다. 프런트 여직원의 오빠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가 식당을 안내하겠다고 한다.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데, 맥주회사인 기네스에서 이동차량을 설치해 놓고 콘서트를 벌이고 있다. 카메룬 사람들이야말로 가무를 즐기는 국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뜨거운 태양을 많이 받은 탓인지 폭발적이라는 점이 우리와 다르다면 다르다.

닭고기, , 감자튀김으로 주문한 식사는, 제법 멀리까지 걸어온 것이 억울하지 않을 정도로 맛있다. 남자도 같이 앉았는데 밥은 먹었으니 맥주만 마시겠다고 해서 한 병 시켜주니까 무척 좋아한다.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는데 먹느라고 정신이 없어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식당에서 나와 호텔로 오면서 보니 이제 거리에는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방에 와서는 양치질만 하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소화도 되지 않아서 속이 거북하기는 하지만, 이미 자정도 넘긴 시각이라서 내일을 위해서는 그래도 참을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