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食]/새우의 강

2001년 5월 24일(목) : 야운데로

그러한 2008. 7. 12. 12:54

 

2001 5 24() : 야운데로

 

-          맑음, 방가(2:00, 버스), 두알라(2:45, 완행버스),

야운데(3:35, 버스), 경비 7,800세파

 

아침에는 일찍 일어났다. 먼저 세수부터 하고 끓여주신 커피도 한 잔 마셨다. 아침밥을 기대할 염치도 없지만 갈 길이 바쁘기도 해서 7 길로 나섰다. 어제 준비한 위문품(!)과 사장님이 따로 전해주라고 챙겨주신 것까지 해서 짐이 꽤 무겁다. 제법 다녀서 이제는 익숙한 대로, 롱쁘웽에서 택시를 갈아타서 정류장에 도착했다. 혼자서 다닐 때보다 택시를 잡는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차표를 사고 생수도 2병 샀다. 한 병은 우리가 마실 것, 다른 하나는 단원들에게 전해 줄 것이다. 차에 오르기는 했지만, 아직 이른 시각이고 쉬는 날이라서인지 승객이 별로 없다. 오늘 야운데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아침부터 마음이 급하다. 한 시간 정도 지나니 출발한다. 승객은 모두 18명이다.

기름을 채우기 위해서 잠시 서는가 싶더니, 이내 큰 도로로 접어들었다. 오늘은 유난히 경찰검문이 많은 것 같다. 벌써 두 차례나 치뤘는데 요금소를 통과하니 또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가, 쉬는 날일수록 도로에서 경찰 검문이 많은 것은 심리적이고 경제적인 이유에서라고 냉소적으로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모를 일이다.

무텡게네를 지나서 또 한 차례 검문을 받는 다음 마일-17에 도착했다. 이 곳에 설 때마다 꼭 소야를 하나씩 사먹는 것이 이제는 아예 습관이 되었다. 두 번 더 검문을 받은 다음 무유카에서 조금 더 가다 보니, 차창으로 우리가 가려고 하는 병원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보인다.

 

출발한 지 두 시간 만에 방가에 도착했다. 병원 - The Apostolic Hospital – 은 아래로 조금 내려가야 하는 바쿤두Bakundu 마을 안에 위치하고 있었다. 정문에서 직원에게 물어 보니, 단원들을 잘 아는지 직접 숙소까지 안내해준다.

유아교육과 컴퓨터 분야로 6개월간 파견된 두 여자단원들은, 원래 파견지는 붸아였는데 사정상 이 곳에서 활동하고있다고 한다. 지난번에 야운데에서 봤을 때보다 얼굴이 좀 안돼 보였는데, 이런저런 이 곳에서의 생활을 씩씩하게 말하는 걸 듣고 있으니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쉬는 날이라서 직원들이 평소보다는 적다고 하는데 모두 따뜻하게 환영해 줘서 고마웠다. 이 곳에서 근무하면서 2주에 한번씩 야운데의 집에 들른다는 닥터 오벤도, 마침 자리에 있다가 무척 반갑게 맞아주며 병원시설을 견학시켜 주었다. 종교기관에서 운영하는 곳이라서 재정이 양호한 탓인지,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관리가 잘 되고 있는 것 같았다.

행정책임자를 만난 자리에서는 고장난 컴퓨터가 있다면서 해결해주기를 부탁받았는데, 프로그램이 따로 필요한 문제여서 다음에 다시 오기로 약속했다. 두 단원이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주변마을을 둘러보았다. 병원 내부가 한적하고 차분한 분위기인 것에 비해서, 북적거리고 활기가 넘치는 것은 여느 마을과 다르지않아 보인다.

한국에서 올 때 준비해 온 것인지, 점심식사로 라면을 끓여서 가져왔다. 원래는 두 사람을 근처 식당에 데려가서 맛있는 음식을 사주려고 생각했었는데, 마땅한 곳이 없어서 오히려 민폐만 끼치게 되었다. 남은 국물에 밥을 말아서 깨끗하게 비우니까 모두들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오랜만에 먹는 라면은 김치가 없어도 맛있다.

조금 더 이야기 나누다가 그만 일어서야 했다. 두 봉사자와 직원들이 자고 가라며 섭섭해하지만, 내일 출근을 해야하는 만큼 그럴 수는 없어서 더 미안하다. H단원이 고장난 컴퓨터를 한 번 더 검사하는 동안, 두 사람은 남은 밥으로 주먹밥을 싸서 가는 길에 먹으라고 챙겨준다.

버스 타는 길까지 따라나온 두 사람을 뒤로하고 차에 올랐다. 두알라까지 가면서 수시로 승객을 태우는 버스라서 이 곳에서도 서는 모양이다. 아직 주먹밥의 온기가 손 끝에 남아있는데, 두 사람의 모습은 점점 작아져서 마침내 보이지 않는다. H단원이 두알라에 가서 프로그램을 챙겨 내일 다시 오기로 했다니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진다.

 

마일-17을 지나서 4시쯤에는 무텡게네에 도착했다. 당초에 바로 두알라로 간다고 했던 것과는 달리 다른 차로 갈아타라고 한다. 한참을 기다려도 차는 다시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는 환불을 요구하면서 실랑이를 한 다음에야 비로소 출발이다. 마음이 급하다 보니 불필요하게 감정을 드러낸 것 같아 씁쓸하다. 현상적으로는 똑 같이 차를 기다리고 타는 것인데도, 여행 자체로 즐길 때와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한 수단일 때의 마음이 이렇게 다르다.

경찰의 검문이 한 번 있고 나서 아야토Ayatto에 도착했다. 나무 위에 허수아비처럼 보이는, 검은색 천으로 만든 인형을 걸어둔 것이 보인다. 새를 쫓으려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주술적인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 번 더 경찰의 검문을 받고 차는 두알라에 도착했다.

사진관에 들러 인사만 드리고 짐을 챙겨서 서둘러 나왔다. 사진관 바로 앞에 야운데로 운행하는 또 다른 버스회사가 있어서 물어보니 바로 출발하는 차편이 있다고 한다. 회사마다 각각 다른지 이곳은 요금이 2,500세파이다. 차에 올라 자리를 잡으니까 이내 움직인다. 미니버스 정도의 크기인데 운행한지 얼마되지 않은 듯 새 차처럼 보인다. 승객들도 적당히 채워져 있어서, 고속으로 달리는 차에 탄 사람들이 한쪽으로 쏠려 자주 전복된다는 사고사례는 잊어버려도 될 것 같다. 기름을 채우기 위해서 한 번 선 이후로는 밤길을 쉬지도 않고 계속 달리기만 한다.

좌석도 편안하고 옆사람과 그리 부대끼지 않을 정도로 거리도 둘 수 있어 쾌적하다. 스피커를 통해서 계속 음악을 틀어 주었는데, 중간에 남자승객 한 사람이 큰소리로 항의를 하는 바람에 다소 소란스러웠다. 카메룬이 최고라고 하면서, 운전사에게 팝송 대신 마코사 음악을 틀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소리쳐도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니까 차라리 내리겠다며 차를 세웠는데, 아마 목적지에 다 온 것 같았다. 덕분에 지루하지않게 왔다 싶은데, 승객들의 반응은 그가 제 정신이 아닐 거라는 것이었다.

야운데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집에 오니 10 이다. 늦은 시각이지만 출발한 시각에 비해서는 무척 빨리 온 것이다. 차 안에서 먹지 못한 주먹밥을 먹고 나서, 씻고 약간 쉬다가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