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완스님]마음이 너무 가라앉은 경우에는?
Q 수행에서 ‘아는 마음을 다시 보라’거나 ‘앞의 마음과 뒤의 마음을 보라’란 무슨 뜻인가?
A ① 앞의 아는 마음은 알음알이(識)이고 뒤의 보는 행위는 관(觀 sati or paññā)으로 비추어봄을 뜻한다. 보고 또 보아서 앞의 마음에 집착이 있음을 알면, 뒤의 마음에선 집착이 떨어진다. 그리고 기억에 의지해서 일어난 의식은 알아채는 순간 사라진다. 그걸 조건으로 새 의식이 생멸하는 틈새마저 샅샅이 알아차릴 때 분명히 알게 된다. 이렇게 보이는 대로 관찰함으로써 아는 마음(識)이 알음알이를 놓아버리는 지혜로 전환되는 것이다. 오온의 생멸 현상을 알아차려서 그 원인을 꿰뚫어보면 어둡지 않다.
아는 마음(識)을 알아차릴 때, 노력이나 삼매가 약해지면 거듭 마음을 챙겨서 알아차림을 강화한다. 그러면 앞의 알아차림이 뒤의 알아차림의 원인이 된다. 그리 계속 알아차리면 번뇌가 끼어들지 못해서, 대상에 올바로 겨냥되고 밀착된 상태로 앎만 이어진다. 그러다가 그 앎마저 사라지면 깨인 상태만 남는다.
여기에서 아는 마음을 챙기는 걸 반야로 비추어보는 게 칠각지(七覺支)의 하나인 염각지(念覺支 ‘마음 챙김’이라는 깨침의 요소)다. 오온의 생멸 과정을 사띠(sati)로 비추어보면 안과 밖이 뒤바뀌어서, 현상의 사이사이에 즐거움을 추구하는 의도가 보임과 동시에 그걸 놓게 된다. 스치는 생각과 불쑥 튀어나오려는 언행을 챙겨서 비추어보는 신중함은 번뇌를 다스리는 비결인 것이다.
② 햇살을 받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걸 놓치지 않고 본 다음, 전체의 그림자를 게슴츠레 눈을 뜨고 본다. 제대로 보려면 이렇게 세상을 두 번 눈여겨본다. 바라보고 비추어볼 때 미처 보지 못한 게 보인다. 마음을 이리 다시 보면 나뭇가지(몸)보다 나무뿌리(마음)가 보여서 한결 여유롭다. 나뭇잎이 나뭇잎을 보면 별개이나, 뿌리에서 보면 하나다.
Q 칠각지(七覺支: bojjhanga) 현상은 어떻게 관찰되나?
A 아는 마음을 다시 보면, 일곱 가지 깨침의 필수 요소들을 다 볼 수 있다. 처음엔 오온의 생멸이 뚜렷하다가 점차 칠각지 현상이 생멸하는 게 비추어볼수록 더 분명히 보인다. 법을 탐구(dhammāvicaya)하는 과정에서, 노력(viriya)을 기울여서 마음 챙겨(sati) 삼매(samādhi)가 깊어지면 희열(piti)보다 고요함(passaddhi)과 평등심(upekkhā)이 일어 잠잠하다.
Q 마음이 너무 가라앉은 경우에는?
A 보리심(bodhi-citta)으로 주의(注意)를 일으켜서 불법을 만난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전심전력하다 보면 법열(法悅)이 인다. 반대로 마음이 들뜬 경우에는 하나의 대상에 초점을 맞추어 정확히 겨냥하면 절로 심신이 고요해지며 평등심이 자리잡아서 행복하다. 그러나 그 평온 뒤에는 연속적인 고통스런 불안이 있고 또 거기에는 간헐적인 평온이 있다.
Q 「대념처경」에는 “안으로 밖으로, 또는 안팎으로 관찰 대상을 보이는 대로 관찰하면, 집중이 깊어질수록 대상에서 실제로 생멸하는 현상과 그 원인을 분명히 알게 된다.”라고 나와 있는데, 여기에서 안과 밖은 무엇을 말하는가?
A ① 안은 자기 자신이고 밖은 타인을 가리킨다. 타인에 대하여 주의 깊게 긍정적으로 이해할 여유를 지니고 깨어 있으면, 동질의 요소와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어서 나를 봄으로써 남도 알게 된다. 나는 남에 의하여 남을 위하여 남과 더불어 살아간다. 그러므로 나를 먼저 보고 자기 자신에 미루어 남을 간파해서 본 다음에 나와 남을 같이 바라보고 비추어본다. 사랑받고 싶은 욕망에서 무의식중에 남을 먼저 챙길 때도 있으나, 그 순간도 나와 남을 동시에 챙긴다.
② 거북이가 위험에 처하면 네 발과 목과 꼬리를 몸통 속에 감추어서 위험을 피하듯이, 감각의 문(六根: 眼·耳·鼻·舌·身·意)에 감각 대상(六境: 色·聲·香·味·觸·法)이 들어오더라도 거기로 마음이 향하지 않으면 세속에 있어도 세속에 물들지 않는다. 그러려면 눈·귀·코·혀·몸을 통해 들어오는 모든 현상을 마음으로 알아차려야 한다. ‘안으로 밖으로’는 내적인 감각의 문으로 들어오는 바깥 대상을 일일이 알아채는 걸, ‘안팎으로’는 감각의 문의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한꺼번에 알아차림을 뜻한다. 바깥 경계에 반연된 표면의식은 물론이고 바깥 경계가 차단된 상태의 내면의식까지 빠짐없이 대상화하여 관찰해서 밖으로 모든 연(緣)을 쉬고 안으로 마음의 헐떡임이 없을 때, 안에 숨었다가 밖으로 향하는 미묘한 무의식을 아는 마음으로 예리하게 꿰뚫어서 비추면 안팎이 두루 환하다. 이렇게 보는 행위와 대상과 마음이 일치될 때 그 본성은 모습을 드러내나, 보려는 마음이 있으면 외려 보이지 않는다. 알려고 애써서 아는 지식으로써 어찌 알려고 하지 않아도 절로 알아지는 지혜를 알 수 있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