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息]/빈자의 양식

불을 당겨서

그러한 2008. 9. 5. 14:00

 

밤이 어둡다고 눈까지 감지는 말 일

부디 그러지 말 일

잠들지 못하면서 눕지는 말 일

억울해도 그냥 참고

죽지는 말 일

 

그럴수록 두 눈에 기름을 채워

등피 닦아 심지에 불을 당겨서

일어나서 앉을 일

일어나서 걸을 일

 

지금이 몇 시인가 궁금해 하지 말 일

새벽이건 오밤중이건 마찬가지다

구들장 밑으로는 지하수가 지나가고

지붕 위로는 별이 빛나서

어디선가 소리 죽여 흐느끼는 소리

죽지 않고 살아 있기

잘한 일이다

 

잠들지 말 일

불을 밝힐 일

제 그림자 밟고서 팔짱을 끼면

철학을 밭갈듯이 걸을 일이다

삼백 리건 오천 리건 걸을 일이다

                          

 

 

- 이향아, <불을 당겨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