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息]/밑줄 긋기

진정으로 살아 있어라

그러한 2011. 4. 28. 14:34

 

 

불치병에 걸린 남편을 둔 아내들은,

만약 남편이 병들기 전에 그렇게 했다면 일주일에 한 번씩 미장원에 가야한다.

아내가 아프기 전에 일주일에 한 번씩 볼링을 쳤던 남편들은 계속 그렇 해야 한다.

가족 구성원들이 각자 자기의 삶을 이어나가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다른 인간관계들을 모두 끊어버리고 나면 그들이 돌보던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일상을 되찾기가 훨씬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친구들을 집으로 데리고 올 수 있어야 한다.

다른 방에서 조용히 놀더라도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환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라고 격려한다.

환자가 그들의 형제이건, 부모이건, 조부모이건, 그들이 원하는 것이면 무슨 이야기라도,

심지어 죽음과 장례식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죽어가는 엄마와 아빠, 형제와 자매들,

심지어는 그런 이야기를 몹시 불편해 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과도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p.175)

 

 

우리 자신이 삶의 폭풍을 두려워한다면 진정한 평화는 찾을 수 없다.

온실의 화초처럼 아이들을 보호해서는 결코 그 아이들에게 평화를 줄 수 없다.

무조건적인 사랑의 의미를 아는 부모, 아이들이 집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부모를 둔 아이들만이 평화를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아이들이 처음으로 학교에 등교하는 날, 스쿨버스에 태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부모,

자전거에 보조바퀴를 달아줄 줄도 알지만 때가 되면 떼어줄 줄도 아는 부모가 되어야 할 것이다.

(p.195)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당신의 짐을 지워주는 것이 아니라, 그를 돕는 것이다.

그 도움을 거절한다고 해도 그는 도움을 거절하고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자신을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내일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 없이 사는 것을 의미한다.

진정한 삶을 산다는 것은 삶의 폭풍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거센 비바람이 없으면 협곡의 절경도 없다.

(p.204)

 

 

 

<안녕이라고 말하는 그 순간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어라>,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도서출판 이레,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