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마주하고 홀로 생각하다
자신에게 이별을 알리고 자신과 헤어져라.
손을 흔들어 어제와 작별하고, 손을 흔들어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웠던 어제와 작별하고, 손을 흔들어 어제의 시집 및 문집과 작별하고,
손을 흔들어 문예적이고 교수적인 어제의 말투와 작별하는 것이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 일이다.
일단 자기 연민에 빠지게 되면 멀리 가지 못하게 되고, 일단 자기 연민에 빠지게 되면 어제의 그림자에 잡혀 꼼짝 못하게 된다.
일찍이 자기 학대에 속하던 시대는 끊임없이 자신을 유린하던 시대였다.
자기 학대에 대한 징벌이 바로 자기 연민을 낳았다.
일찍이 자기 연민에 속하던 시대는 언제나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고 미소를 지으며
그것이 환상과 환각임을 잊고 있었기 때문에 환상과 환각 속에서 살아간다.
지금처럼 매일 자신에게 이별을 알리고, 매일 환상과 환각에서 벗어난 이후에야 진실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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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은둔은 산속에 숨어서도 가능하고 번화가에 숨어서도 가능하다.
왁자그르르한 도시가 가만히 앉아 조용히 생각할 수 있는 동굴이 될 수도 있고 한 폭 깨달음의 벽으로 변할 수도 있으니,
십 년이나 몇 십 년 동안 벽을 마주하게 만든다.
달마가 실천한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철저한 은둔이다.
어디를 가든 언제나 구름처럼 떠돌거나 절대 자유의 경지에서 노닐 수 있다는 점이 그의 삶의 특징이다.
동굴에 있든, 궁궐에 있든, 절집에 있든, 세속에 있든 그는 언제나 면벽하여 도를 깨닫고 그것을 말할 수 있다.
만약에 달마가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에 갔다고 하더라도
그는 반드시 그곳을 동굴이나 벽으로 삼고 마천루를 마주 보고 깊이 생각에 잠길 수 있을 것이다.
철저한 은둔 생활은 마음 속 깊은 곳에 있으니 몸은 비록 속세에 있더라도 왁자그르르한 속세와는 마음의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
마음의 거리는 은둔자의 정신 세계가 어느 곳에 있더라도 냉정과 완전함을 획득하게 만든다.
철저한 은둔은 마음의 은둔이지, 몸의 은둔이 아니다.
- 류짜이푸 지음, 노승현 옮김, <면벽침사록>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