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息]/나누고 싶은 글

나를 마주 보는 일은 정말 힘듭니다

그러한 2011. 10. 15. 15:02

 

 

당신은 큰 슬픔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슬픔은 그냥 지나갔습니다.

당신은 슬픔이 그렇게 지나간 것이 당신을 힘들게 했고, 화나게 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큰 슬픔이 오히려 당신의 한가운데를

꿰뚫고 지나가지는 않았는지 깊이 한 번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당신 안의 많은 것이 변화되지 않았는지, 슬퍼하는 동안 당신의 본질의 어떤 부분이 변화되지 않았는지요?

우리의 지식 이상으로 더 멀리 볼 수 있고,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너머를 조금이라도 더 볼 수 있다면

우리는 기쁨보다 오히려 슬픔을, 믿음을 가지고 감내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슬픔의 순간에 새로운 것, 미지의 것이 우리 안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때 우리의 감정은 불안하게 침묵하고, 모든 것은 우리 안으로 뒷걸음질합니다.

그리고 고요함이 찾아오고, 아무도 모르는 전혀 새로운 것이

내면의 한가운데서 침묵하고 있습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

 

 

당신은 사람들에게 많은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예속에서 벗어나라고 하고, 자신의 발로 본질적인 것을 발견하기 위해

어린아이 같은 신앙의 신발을 벗어 버리라고 말합니다.

 

나를 마주 보는 일은 정말 힘듭니다. 그래서 종종 나를 속일 위험이 있습니다.

당신의 길은 내가 전능하다는 환상에서 벗어나

나에게 나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고 설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나는 벌써 오래 전에 당신을 이해해야 했습니다.

당신의 실천은 인간의 해방이 중요함을 보여줍니다.

 

당신은 비유와 상징으로 그것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소유의 삶을 사는 사람은 결코 자기 자신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아주 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고정관념 조차도 익숙한 것을 버리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이것은 한마리 새가 굵은 실 대신 가는 실에 묶여 있는 것과 같습니다.

가는 실도 굵은 실과 마찬가지로 날아가기 위해 새가 그 실을 끊지 않는 이상

새를 단단히 붙잡고 있습니다.

가는 실은 끊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아무리 쉽다 할지라도 실을 끊지 않으면 날아갈 수 없습니다.'

 

 

- 피에르 슈투츠, <칠흑의 밤을 비추는 빛>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