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도마 복음서
도마 복음서(Gospel df Thomas) 토마스 복음서는 기독교 신약서 외경의 하나로서, 서문에서는 예수의 12사도 중 한 명인
디모드 유다 도마가 섰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문서는 이단으로 배척된 영지주의 문서로 알려져 있다,
고대 그리스어 원본을 콥트어로 번역한 것으로 보이는 완전한 콥트어 판본이 1945년 나지함마디에서 발견되었으며 이후,
1898년 이집트에서 발견된 그리스어 문서 중 일부가 도마 복음서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도마 복음서는 4대 복음서와 달리 예수의 삶에 대한 내용을 담지 않고 있으며, 예수의 가르침만을 다루고 있는데, 소위 겨자
씨의 비유등의 일부 내용이 복음서에도 나온다,
도마 복음서는 비슷한 이름의 문서인 도마행전(The Acts of Thomas), 도마의 유아기 복음과는 다른 것이다,
1945년 12월, 이집트 북부 나일강 기슭에 위치한 나그함마디 마을 근처에서 무하마드 알리 형제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 나그함마디 문서 뭉치 속에는 고대 이집트어의 한 형태인 콥트어로 적힌 13개의 두루마리로 된, 총 52편의 문서가 담겨 있었
다, 또한 그곳에는 예수의 비밀스런 가르침이라 일컬어지는, 지금의 성경에는 포함되지 않은 여러가지 이름의 복음서들이 들어
있었다, <진리 복음> <도마 복음> <야보고 외경> <빌립 복음> 등이 그것이다, 현재의 신약 성서와는 달리 로마 교회의 검열과
첨삭, 의도적인 수정을 거치지 않은 나그함마디 문서들은 놀랍고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어 예수의 진정한 가르침에 접근하는 길
을 열어주고 성서 역사 연구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중 가장 관심을 끈 것이 <도마 복음>이다,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로마제국을 통일하고 그리스도교를 승인할 당시, 북부 이집트의 한 지역에 세워진 그리스도교 최초
의 수도 공동체 파코미우스 수도원에는 종교 철학 서적들이 많이 소장되어 있었다, 신약 성서에 포함시킬 내용들을 확정한 뒤, 이
집트의 알렉산드리아의 추기경이며 권력자였던 아타나시우스는 `이단적` 이라고 여겨지는 책들을 모두 소각하거나 파기하라는 명
령을 내렸다, 소중한 경전들을 차마 불태울 수 없었던 파코미우스의 수도승들은 그것을 비밀리에 항아리에 담아 근처 바위 옆에 묻
었다, 무하마드 형제가 우연히 발견되기 전까지 1600년 동안 그곳에 묻혀 있었다,
" 도마 복음은 신약 성서의 다른 복음서들과 달리 예수를 신의 대변자, 신의 아들이라기 보다는 깨달음에 이르는 영적 스승의 모습
으로 묘사한다, 예수는 자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제자들 각자의 내면의 자각을 통해 하늘나라에 이를 수 있음을 말한다,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도마 복음 원본에는 원래 숫자 구분이 없지만 오늘날 학자들은 편의상 도마
복음을 편의상 도마 복음을 114절로 구분한다, 도마복음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의 4복음서와는 달리 예수의 출생이나 활동
등의 행적에 관한 이야기, 십자가와 부활 시간에 대한 언급 등 상황이나 배경 같은 역사적인 정황이 전혀 없다, 오로지 예수의 가르
침, 예언, 격언, 우화 등 예수의 어록만이 서로 연결되지 않고 독립적인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마 복음은 4복음서와 공퉁되는 내용도 많이 있으나, 4 복음서와 달리 믿음이 아니라 깨달음을 강조함을써 공인된 성경에는 포함
되지 못했다, 도마 복음은 예수만이 유일한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대신 예수의 가르침을 자신 안에서 깨달으면 누구나 예수
처럼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도마 복음>은 콥트어(1세기경부터 사용되어 7세기경 이슬람이 정복할 때까지 이집트에서 거의 유일하게 사용된 공식언어)로 쓰여
졌다, 이보다 이른 시기인 19세기 말, 나일강 하류의 옥시린쿠스에서 발견된 파피루스 뭉치에도<도마 복음>의 일부가 담겨 있었으며
이것은 그리스어로 쓰여진 것이다, 학자들은 콥트어 본이 그리스어 본의 번역본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2008년 류시화
첫구절 ;
" 이것은 살아 계신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디두모 유다 도마가 받아 적은 비밀의 말씀이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 누구든지 이 말씀들의 속뜻을 발견하는 사람은 죽음을 경험하지
않으리다,"
저자와 시기 ; 유다 도마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여러가지 이유에 의해 도마가 직접 쓰기보다는 후대 사람들에
쓰여진 것이라고 본다, 베드로가 로마에서 그랬듯 도마는 시리아 지역의 믿음의 대표격이었다, 따라서 도마 복음은
시리아에서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도마 복음서의 저작 시기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어록 복음서의 특성상 4 복음서보다 먼저 씌었다고 보는 이들도 있고,
영지주의적인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아 영지주의가 유행했던 1세기 후반 이후의 저작, 또는 후대에 편집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느님 나라의 도래 누가복음 17: 20- 25 (공관복음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ㅇ 또 "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대에 있다,"
사람의 아들의 날(마태, 24, 23, 28, 37, 4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날을 하루라도 보려고 갈망할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다, ㅇ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라, 저기 계시다,` 또는 `보라, 여기에 계시다,`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
는 나서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마라, ㅇ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날에 그리할 것이다, ㅇ 그러나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
그 나라는 우리 안에 있다.(도마 복음 3절)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너희들 인도하는 자들이 너희에게, `보라, 그 나라는 하늘에 있다`고 말한다면
그렇다면 공중에 새들이 너희보다 앞설 것이다,
만일 그들이 너희에게 `그 나라가 바다 속에 있다` 고 말한다면
그렇다면 물고기들이 너희보다 앞 설 것이다,
그러나 그 나라는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바깥에 있다,
만일 너희가 너희 자신을 알면 너희는 알려질 것이고
너희는 너희가 살아 계신 아버지의 아들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너희가 너희 자신을 알지 못하면
너희는 가난 속에 머물게 되고
너희 자신이 가난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영지주의적인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대표적인 3절이다,
흔히 이것을 내부로부터의 자각을 주장하는 영지주의적인 구절로 해석한다, 그러나 누가 복음서 17: 20~25와
유사하기도 하다,
도마복음서 26절과 공관복음서(마태복음서, 누가복음서) 모두 " 다른 사람의 티는 잘 보면서, 자기안의 들보는
못본다" 는 예수의 말씀이 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 마태복음서 7:3~5
마태복음서에서는 `위선자`라는 단어를 추가하여, 예수의 가르침을 강조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너희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한다,
너희가 먼저 너희 자신의 눈 속에서 들보를 빼낼 때 너희는 비로소 밝게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줄 수 있을 것이다," (도마 복음 26절)
나는 모든 것을 위에서 비치는 빛이다,
나는 모든 것이다,
나로부터 모든 것이 나왔고,
모든 것이 나에게로 돌아온다,
나무토막을 쪼개 보라,
내가 그곳에 있다,
돌을 들추어 보라,
그러면 그곳에서 너희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께 말했다,
" 하늘나라가 무엇과 같은지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한 알의 겨자씨와 같다,
모든 씨앗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이지만
그것이 밭에 떨어지면
한 그루의 큰 나무가 되어
하늘을 나는 새들의 보금자리가 된다,"
예수는 내면세계의 혁명가였다, 그는 인간 내면의 왕국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예수는 하나의 씨앗이다, 그대 역시 그 씨앗을 가지고 있다,
씨앗이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그 씨앗 자체가 감옥이 되어 버린다,
씨앗이 나무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죽을 때 나무로 자랄 수 있다,
예수는 깨달음의 나무이다, 그대가 곧 씨앗이고 하늘나라의 가능성이다,
죽을 준비를 하라, 삶을 무엇이라 부르든 그것은 서서히 퍼지는 독이다, - 오 쇼 -
도마 복음이 정경(관음복음서)으로 채택되지 않은 이유,
ㅇ, 이단 문서로 정좌되었다,
ㅇ, 가짜 문서라고 여겨졌다,
ㅇ, 초대 기독교에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이레니우스가 <이단에 반대하여>(=<이단반박>)에서 언급한
비슷한 책이 있으나 도마 복음서인지 다른 도마의 이름이 들어간 문서인지는 불분명하다,
ㅇ, 서술 복음서들을 위협하다고 여겨졌다,
ㅇ,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의 추기경 아타나시우스가 이단적이라고 여겨지는 책을 모두 소각하고 배척했다,
ㅇ, 정통 기독교와 영지주의 본질적인 차이는 정통파 기독교에서는 구원이 `믿음`(신앙, faith)을 통해 가능하다는
견해를 가진 반면 영지주의에서는 구원이 `앎`(gnosis)을 통해 가능하다는 견해를 가진 것에 있다,
영지주의(Gnosticism, 靈智主義), 2세기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 두드러졌던 철학적, 종교적 운동,
영지주의는 여러 전통 종교들로부터 영향을 받고 또는 영향을 주었지만, 초대 그리스도교에 가장 심오한 영향을 미처,
교회법, 신조, 주교조직이 생겨나게 했다, 영지주의라는 명칭은 그리스어 `그노스티코스`(`그노시스`, 즉 `비밀스런 지식`
을 소유한 사람)에서 유래했다, 영지주의 사상에 반대한 교부들(185경 일레나이우스, 230경 히폴리투스, 375경 에피파니
우스)의 글과 영지주의 저작들 자체에 소개되어 있는 영지주의 현상은 신학, 윤리학, 의식 등과 복합적으로 관련되어 있
기 때문에 엄격히 분류하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영지주의 분파들은 교육이나 경험 관찰이 아닌 계시에 위해 얻어지는 비밀스런 지식의 구속능력을 공통적으로
강조한 듯하다,
영향, 그리스도교 교리의 발전은 대체로 영지주의를 반대하기 위한 것이었다, 신조를 작성하고, <신약성서>를 정경으로
확정하고. 주교(감독)의 권위를 강조한 것은 영지주의 주장에 맞서기 위해 필요했다, 영지주의 신학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최초의 신학자들이었으며, 그들의 사상체계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사상이 체계화되도록 자극했다, 그외에도 그들은 자유,
구속, 은총 등 그리스도교 저자들이 한 동안 잊고 있던 중요한 주제들을 활성화시켰다, 훗날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은 그가
초기에 마니교도(기독교, 유대교, 불교의 요소를 결합)로서 경험한 것에 크게 힘입은 것이었다,
성격, 영지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의 무의식적 자아는 신성과 동일한 본질을 가지고 있지만, 불행히도 타락했기 때문
에 진정한 본질과 완전히 동떨어진 세상에 던져졌다, 사람은 위로부터 오는 계시를 통해서 자신의 기원, 본질, 초월적인
운명을 알게 된다, 또한 그리스도교 계시와도 구별되어야 한다, 영지주의적 계시는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으며, 성
서에 의해서 전송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히려 자아의 신비에 대한 직관이다, 영지주의자들에 따르면 하느님은
이름이나 설명을 초월하는 심연과 침묵이고, 절대자이며, `플레로마`, 즉 빛의 영역을 형성하는 선한 영들의 원천이다,
2세기 영지주의 분파들은 히브리와 그리스도교 종교 저서를을 사용하면서도, 영지주의의 의미들을 그것과 구분하기 위
해 알레고리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영지주의 집단은 학파를 구성하여 권위 있는 가르침을 전수하고, 해석하며 비밀을 보
존한 듯하다, 의식도 분파에 따라 달랐다,
역사, 학자들은 영지주의 세계관의 기원을 이란의 종교적 이원론, 중기 플라톤 철학자들의 알레고리적 이원론, 특정 유대
교 신비주의자들의 묵시적 사상에서 찾는다, 이집트인들과 메소포타미아인들의 사상에서 기원을 찾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영지주의적 종교혼합주의가 충분히 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리스도교가 등장하고 난 다음이었다, 최초의 영지주
의자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시몬 마구스이다, 그는 악이 신성의 내적 분열에서 생겼다는 영지주의 근본 개념을 소
개한 1세기 유대교 이단자였다, 그러나 시몬의 `그노시스`는<신약성서> 후반부에서 언급되는 영지주의 집단들과 마찬가지
로 본질적으로 유대교와 유일신교에 머물러 있었다, 이원론적인 관점은 영지주의가 널리 보급된 이후 헬레니즘을 세계에서
플라톤 철학의 영향을 받아 확립되었으며, 플라톤 철학으로부터 하위의 신 데미우르고스(조물주)가 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주장을 빌려왔다, 이러한 주장은 <요한의 외경>, (2세기 초),1940년대에 상(上)이집트 나지 함마디 근처에서 발견된 다른
문서들(통속적인 `영지`를 다루었음), 3세기 콥트어 영지주의 저서 <신앙의 지혜, Pistis Sophia>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발렌티누스, 바실리데스와 이들 학파가 제시한 지적인 `영지`론은 통속적인 `영지`를 전제로 삼았지만, 그것은 철저히 헬
레니즘과 그리스도교로 채색되었으며, 때로는 중기 플라톤주의의 견해에 매우 가까웠다, 동방의 영지주의는 조금 다른 과
정을 겪었다, 전통적인 이란 종교의 영향을 받은 반(半)영지주의적인 마니교(기독교, 유대교, 불교의 요소를 결합)는 영혼
과 물질의 절대적인 우주적 이원론을 발전시켰다,
ㅇ, 초기의 기독교에 불교 영향은,,,,
3세기에, 시리아의 저술가이자 영지주의 신학자였던 바르다이산(bar Daisan, 154-222)은 인도로부터 온 성자(聖者)들의 종교
사절단과 나눈 교류에 대해 기술하였다, 바르다이산에 따르면, 이들은 시리아를 통해 로마 황제 엘라가 빌루스 또는 세베루스
왕조의 한 로마 황제에게로 가는 중이었다, 바르다이산의 서술인 포를피리오스에 의해서도 언급되었고, 또한 스토바이우스(
stobaeus)에 의해서도 언급되었다,
기원후 3세기부터, 12세기까지 기독교, 유대교, 불교의 요소를 결합한 마니교와 같은 영지주의 종교들이 구세계 전역으로, 그
리고 서쪽으로는 골과그레이트 브리튼 섬으로, 동쪽으로는 중국으로 널리 전파되었다, 당시에 어거스틴과 같은 몇몇 주요 신학
자들은 마니교 신자들이었다가 정통파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아마도 이러한 교류들 중 많은 것들이 기록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교류들은 불교가 초기 기독교에 일정 정도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시사한다,
학자들은 종종 불교가 기독교의 초기 발전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자들은
붓다와,,,예수의 탄생, 삶, 교의, 죽음에서 많은 유사점들이 있다는 것에 주목하여 왔다,
- 벤틀리 레이턴,<구세계와 만난 사람들, old world Encounters>
그러나, 이러한 2차적인 자료가 아닌 1차 자료인 나그함마디 문서의 문헌들만을 대상으로 할 때, 기독교, 유대교, 헬레니즘 철학
의 요소들이 뚜렷이 발견될 만큼, 불교의 요소들이 시리아 - 이집트 영지주의 문헌들에서 직접적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다,
도마 복음서의 많은 내용이 4복음서와 중복되어 있는 평행 본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