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息]/밑줄 긋기

질병은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오나

그러한 2012. 10. 23. 13:34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우리 인생에는 다른 모든 충격에 선행하는 특별한 충격이 하나 있다는 것이다.

출생의 충격이 그것으로, 세상에 태어날 때 우리에게는 우주의 본질에서 분리되었다는 강한 인상이 각인된다.

출생의 충격과 그 충격이 우리한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책임이 부모님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충격은 하나의 자연현상이고 실존적인 현실이다. 세상에 태어나려면 겪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어쨌든 그 여파로 우리는 분리되는 일에 대해 강한 불안을 느끼며,

그 불안 때문에 사실상 주변 사람들에게 예속되어 살게 된다.

마치 우리 자신이 부족하고 가치 없는 존재이기라도 한 것처럼

주변 사람들 사이에 소속되고 그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정말로 존재하고 있다고 안심하기 위하여

무의식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를 끊임없이 확인받으려고 한다.

남들한테서 인정을 받으면 출생에 따른 분리의 충격으로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불안,

즉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인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억제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급기야 우리는 진짜 모습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모습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기에 이른다.

자신의 진짜 본성과는 어긋난 모습으로, 우리가 삶을 창조하는 존재로서 늘 우주에 속해 있으며

그 우주에서 분리된 적이 곁코 없다는 사실을 잊은 채,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점점 감당하기 어려워지는 삶을 살아가며 힘들어한다.

그렇게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불행을 불러들이며,

질병은 그런 우리에게 문제의 원인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기 위해서 개입한다.

 

 

- 키 코르노, <생의 마지막 순간, 마주하게 되는 것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