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息]/빈자의 양식
과수원 시집
그러한
2013. 4. 25. 11:57
과수원 시집
- 배한봉
봄 과수원에
파릇파릇 돋는 저것은 풀이 아니다
노랗게 발갛게 피는 저것은 꽃이 아니다
바람에게 물어봐라
햇빛에게 물어봐라
대지를 물들이는 저 쑥과 냉이, 씀바귀에 대해
과수원 언저리를 온통 노랑물살 지게 하는 저 유채꽃에 대해
산비둘기가 나뭇가지에 두고 간 울음
그 여운 끝자락을 붙잡고 화들짝 꽃봉오리 여는 홍매에 대해
지난겨울의 눈바람을 먹고
열병처럼 퍼지는 가뭄을 먹으며
온몸으로 대지가 쓰는 시, 나무가 쓰는 시
뻐꾹새에게 물어봐라
벌, 나비에게 물어봐라
저 시 없다면 누가 봄이라 하겠나
저 시집 한 권 읽지 않고 어떻게 봄을 말할 수 있겠나
별과 달이 밤새도록 읽다 펼쳐둔
과수원 시집
나는 거름 져다 나르며 읽고
앞산 뻐꾹새는 진달래 먹은 듯 붉게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