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息]/빈자의 양식

새벽부터 내리는 비

그러한 2014. 4. 29. 15:49

 

 

새벽부터 내리는 비

 

ㅡ 김승강


 

비야 내려라 억수같이 내려라

억수같이 내려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누이의 발길을 돌려 놓아라

새벽 꿈결에 깨어 어 비가 오네 하고 미소 지으며

달콤한 잠속에 빠지게 해라

 

비야 노동판을 전전하는 김 씨를 공치게 해라

무더운 여름 맨몸으로 햇빛과 맞서는 김 씨를

그 핑게로 하루 쉬게 해라

 

비야 내 단골집 철자의 가슴속에서도 내려라

아무도 모르게 가슴속에 꽁꽁 감추어둔

철자의 첫사랑을 데려다 주어라

 

비야 내려라 내려도 온 종일 내려

세상 모든 애인들이 집에서 감자를 삶아 먹게 해라

 

비야 기왕에 왔으니 한 사흘은 가지마라

그동안 세상의 모든 짐은

달팽이가 져도 충분하게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