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息]/빈자의 양식

덮어 준다는 것

그러한 2016. 1. 8. 16:00

 

 

덮어 준다는 것

 

- 복효근

 

 

달팽이 두 마리가 붙어있다

빈 집에서 길게 몸을 빼내어

한 놈이 한 놈을 덮으려 하고 있다

덮어주려 하고 있다

일생이 노숙이었으므로

온 몸이 맨살 혹은 속살이었으므로

상처이었으므로 부끄럼이었으므로

덮어준다는 것,

사람으로 말하면 무슨 체위로 말해질

저 흘레의 자세가 아름다운 것은

덮어준다는 그 동작 때문이겠다

맨살로 벽을 더듬는 움막 속의 나날

다시 돌아서면

벽뿐인 생애를 또 기어서 가야 하는 길이므로

내가 너를 네가 나를 덮어 줄 수 있는

지금 여기가

지옥이더라도 신혼방이겠다

내 쪽의 이불을 끌어다가 자꾸

네 쪽의 드러난 어깨를 덮으려는 것 같은

저 몸짓,

저 육두문자를

사람의 언어로 다 번역할 수는 없겠다

신혼서약을 하듯 유서를 쓰듯

최선을 다하여

아침 한 나절을 몇 백 년이 흘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