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息]/밑줄 긋기

삶을 맛있게 먹는 방법은...

그러한 2016. 5. 3. 16:08

 

 

여기 밥상이 차려져 있다. 내가 받아야 할 삶이라는 밥상이다.

이 밥상 외에는 다른 음식이 주어지지 않는다. 맛이 어떻든 먹어야 한다.

그 밥상이 부실하고 먹을 게 별로 없다면 어떤 것부터 먹어야 할까?

맛있는 걸 가장 먼저 먹어야 한다. 당장 느낄 수 있는 좋은 맛에 빠져들고 즐겨야 한다.

밥상이 부실해도 조금이나마 풍요로워질 수 있는 방법이다.

빈곤한 밥상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다.

먹을 것도 제대로 없는 밥상에서 맛없는 음식을 가장 먼저 먹는 건 바보 같은 선택이다.

맛없는 음식에는 눈도 돌리지 말아야 한다.

 

맛았는 걸 입에 넣었으면 이제는 천천히 씹어야 한다.

많지도 않은 맛있는 음식을 최대한으로 즐기는 것이다.

씹고 또 씹으면서 만끽해야 최고의 효과를 올린다.

어차피 주어진 밥상이고 언제고 먹어야 할 음식들이다.

먹기 싫은 것을 먼저 먹을 필요가 없다. 누가 아는가, 먹는 중간에 밥상이 바뀌는 행운이 있을지.

 

내가 받은 밥상이 나의 삶이고, 음식이 좋은 일과 나쁜 일이라고 하면 어떨까?

여태껏 밥상에서 먼저 입에 넣은 것은 맛없는 음식들이다(나쁜 일들이다).

좋은 일이 있음에도 우리는 나쁜 일에 집착한다. 스스로 아픔을 움켜쥔다.

기쁨과 평온함이 드문 일상이라면, 그래서 부실한 밥상 같은 생활이라면

많지 않은 기쁨과 즐거움을 최대한 즐겨야 한다. 아낌없이 빨아 먹어야 한다. 

그 작은 것들마저 흘려보내거나 외면하면 일상에는 기쁨이 자취를 감춘다.

것 없는 인생일수록 맛있는 것부터 먼저 먹어야 한다.

 

...

 

매일 허덕이는 우리 삶에 차려지는 밥상은 풍족함으로 넘치는 경우가 드물다.

항상 모자라고 거칠고 메마른 쪽에 가깝다.

누구에게 줘버릴 수도 없고 거부할 수도 없다는 게 그 밥상의 특징이다.

내 삶의 밥상이 부실하다면 맛있는 것부터 먹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아주 작은 기쁨도 맛있게 먹어야 한다. 천천히 씹고 또 씹어야 한다.

맛없는 것은 쳐다보지 말고 맛난 것에 몰입해야 한다.

삶을 맛있게 먹는 방법은 기쁘고 좋은 것들을 먼저 입에 넣고 오래도록 씹는 것이다.

 

 

- 유인창, <명상록을 읽는 시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