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息]/빈자의 양식

굴을 지나면서

그러한 2008. 6. 28. 13:08

 

굴을 지나면서                                         

 

- 문태준

 

 

 늘 어려운 일이었다, 저문 길 소를 몰고 굴을 지난다는 것은. 빨갛게 눈에

불을 켜는 짐승도 막상 어둠 앞에서는 주춤거린다.

 작대기 하나를 벽면에 긁으면서 굴을 지나간다. 때로 이 묵직한 어둠의 굴

은 얼마나 큰 항아리인가. 입구에 머리 박고 소리지르면 벽 부딪치며 소리

소리를 키우듯이 가끔 그 소리 나의 소리 아니듯이 상처받는 일 또한 그러

하였다.

 한 발 넓이의 이 굴에서 첨벙첨벙 개울에 빠지던 상한 무르팍 내 어릴 적

소처럼 길은 사랑할 채비 되어 있지 않은 자에게 길 내는 법 없다. 유혹당하

는 마음조차 용서하고 보살펴야 이 굴 온전히 통과할 수 있다. 그래야 이 긴

어둠 어둠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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