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을 위하여
- 김신용
한 때
우리 모두 가난했을 때
판잣집의 쭈그러진 그릇처럼 헐벗었을 때
깡통은,
우리들의 삶의 일부였다
속은 텅 비우고 껍질만으로 굴러 다녀도
깡통은
초라한 꽁초의 집이 되어 주었고
천정에서 떨어지는 빗물의 그릇,
뚫린 벽의 바람막이가 되어 주었다
스스로 텅 비우지 않아도,
늘 비어있는
버린다는 그 의식마저 비우지 않아도,
알맹이는 주고
흙을 담으면 화분이 되어 주었고
쓰레기를 담으면 쓰레기통이 되어 주었다
깡통의 생애가 꽃으로
장식되는 것은 아니지만
깡통 화분이 놓인 山 1번지,
도시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쪽마당 가에
갖가지 빛깔로 핀
깡통 꽃밭을 보며
비록 빈혈이었지만,
우리는 꿈의 어질머리를 앓기도 했다
그 깡통을
발로 차지 말자
홧김의 구둣말로 시궁창에 처넣지 말자
텅 빈 껍질만으로 굴러다니는 알몸이
잿빛의 미래를 펼쳐 보이는,
이 앙다문 몸짓의 물구나무서기라 해도
만나는 그 어떤 것과 몸 섞으며
버려져 뼈아픈 것들을 기억하게 한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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