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오는날 시를 읽고 있으면
- 이생진
시 읽는건 아주 좋아
짧아서 좋아
그 즉시 맛이 나서 좋아
'나도 그런 생각하고 있었어'
하고 동정할 수 있어서 좋아
허망해도 좋고
쓸쓸하고 외롭고 춥고
배고파도
그 사람도 배고플 거라는 생각이 나서 좋아
눈 오는날 시를 읽고 있으면
누가 찾아 올 것 같아서 좋아
시는 가난해서 좋아
시쓰는 사람은 마음이 따뜻해서 좋아
그 사람과 헤어진 뒤에도
시 속에 그 사람이 남아 있어서 좋아
시는 짧아서 좋아
배고파도 읽고 싶어서 좋아
시 속에서 만나자는 약속
시는 외로운 사람과의 약속 같아서 좋아
시를 읽어도 슬프고 외롭고
시를 읽어도 춥고 배고프고
그런데 시를 읽고 있으면
슬픔도 외로움도 다 숨어 버려서 좋아
눈오는 날 시를 읽고 있으면
눈에 파묻힌 집에서 사는 것 같아서 좋아
시는 세월처럼 짧아서 좋아
'[쉼-息] > 빈자의 양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처럼 사는건 나밖에 없지 (0) | 2008.06.28 |
---|---|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0) | 2008.06.28 |
그리움 (0) | 2008.06.28 |
사랑은 끝이 없다네 (0) | 2008.06.28 |
만일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다면 (0) | 2008.0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