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息]/빈자의 양식

수 필

그러한 2013. 1. 11. 10:54

 

 

수필 

 

- 고영민


씨감자는 반을 잘라서 묻지

자른 곳에 검은 재를 발라서 묻지

그리고 잊어먹지


공들여 잊어먹지

이마를 짚어주고 가던 손을 잊지

옆의 흙을 가져와 묻어주던 시간을 아예 잊어먹지

아니, 아주 잊어먹지 않을 만큼만 잊어먹지

눈매에서 싹이 오르지

아주 잊어먹지 않을 만큼만 싹이 오르지, 꽃이 피지


잘려나간 반을 흙속에서 생각하지

눈감고 오래도록 생각하지

들키고 싶지 않을 만큼만 공들여 생각하지

그 사이 반이 하나가 되지

공들여 하나가 되지


하나가 둘이 되고, 셋이 되고

마음 가는대로

열이 되지

 

 

'[쉼-息] > 빈자의 양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들 녘  (0) 2013.01.15
그래도 하늘은 있다  (0) 2013.01.15
한 수 위  (0) 2013.01.11
물은 흘러감에 다시 못 온다 해도  (0) 2013.01.05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0) 2013.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