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息]/빈자의 양식

골목 - 너를 부른다

그러한 2013. 1. 25. 10:53

 

 

골목 - 너를 부른다

 

-강은교


 

너를 부른다

저녁마다 어둠가에 멈춰 서서 너를 부른다

어둠이 올 때면 지붕들은 더 파리해지지

창문들은 달달 떨며 가슴을 닫기우고

천장에 달린 알전구들이 알몸을 빛내기 시작할 때


너를 부른다

어디선가 걸어오는 자정과 자정 사이에서

자정과 자정 사이 끓는 찌개 사이에서

하루치의 여행을 끝낸 신발들, 얌전히 양말을 벗고

마루 밑에서 마루를 그립게 쳐다보고 있을 때

 

자물쇠들은 철컥철컥 가슴의 문을 닫고

혼자 남은 별,

문밖에서 잠기는 자물쇠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을 때

 

너를 부른다

끓는 호박과 호박 사이, 부글부글 감자와 감자 사이

손가락 살짝 데이며 그리 그립게 기다리는 것들아,

사랑받으려 하지 말라, 사랑하라

내 잠들러 가면 거기까지 따라와 곁에 눕는

갈 곳 없는 그림자 하나

그동안 나는 너무 사랑받으려 하였다, 사랑하지 않았다

 

너를 부르고 부른다, 아직 열려 있는 천지간 문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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