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을 관찰하다가 농사를 짓는 게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일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
오케스트라엔 관악기와 타악기 등 수많은 악기가 있고 그 악기들 각자에 최고를 요구해야 하잖아.
그러려면 리듬에 최고로 충실해야만 다른 여러 악기에도 똑같은 것을 요구해서 매력적인 조화를 이룰 수 있지.
그런 이유로 나는 항상 채소 옆에 꽃씨를 뿌렸어.
공존하면서 서로를 비춰 주는 게 가장 필요한 일이면서 아름다운 일이니까.
그러지 않으면 군대에서 사열하는 병사들처럼 줄줄이 서 있는
호박과 상추, 토마토는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과 별로 다르지 않을거야.
그저 사람들의 입으로 들어갈 날만 기다리는 거지.
죽음을 기다리는 그 채소들은 우리의 초라한 내면을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이야.
하지만 그 채소들을 사자 입 옆에 두는 것과 그 자체로 눈부시게 빛나는 금잔화 옆에 두는 것은 전혀 다르지.
아름다움은 아주 작은 것 속에서도 살고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밭에서 무성히 자라는 잡초도 뽑지 않고 그대로 놔뒀어.
내가 그 잡초들의 공간을 침범한 거지 그 반대가 아니니까.
그렇게 그 잡초들을 배려하면서 존중의 형식을 배웠지.
잡초가 자라게 내버려 둠으로써 그 이파리들 속에 숨어 있는 유용한 곤충들에게 그늘과 쉼터를 만들어 준 거야.
밭을 오케스트라라고 한다면 거기서 자발적으로 자라는 잡초는 합창의 일역을 맡고 있을 게 분명하지.
- 수산나 타마로, <영원의 수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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