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의 공허를 충만시키기 위하여 '나'의 생애 전부를 소비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 있는 그대로에 도피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 사람은 그 고독과 공허와 함께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 공허함을 그대로 수용했을 때 분투나 노력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창조적 상태가 출현하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내면적인 고독이나 공허를 회피하고 있을 때에만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보고 관찰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것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모든 분투가 사라진 어떤 상태가 생겨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상태 자체가 창조력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분투의 결과가 아닙니다.
이리하여 있는 그대로의 것 --- 즉, 공허함과 내면의 미숙함 -- 을 이해하고,
그것과 함께 살며 완전히 그것을 이해했을 때,
창조적인 '참된 실재' 와 창조적 이해력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러한 것만이 행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행위라는 것은 실제로는 반응이고, 끊임없이 무엇인가 되려는 것입니다.
그 행위는 있는 그대로의 것을 부정하고 회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공허를 좋다든가 나쁘다든가 비난하거나 정당화하지 않고 자각했을 때,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것을 이해했을 때, 참된 행위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참된 행위가 창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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