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미적 감각이란 그대가 열려 있다는 뜻이다. 그대의 문들이 활짝 열려 있고, 그대는 지금 존재계와 더블어 고동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새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할 때, 심미적인 사람은 즉시 그 노래소리가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 메아리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심미적이지 못한 사람은 새의 노래소리를 듣기는 커녕, 주변에서 들리는 소음에 눈쌀을 찌뿌릴 뿐이다. 새의 노래소리는 그의 가슴에 닿지 못한다. 뻐꾸기가 먼 데서 울기 시작한다. 심미적인 사람에게 뻐꾸기 소리는 먼 곳의 망고 과수원에서 들리는 게 아니라 그의 영원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나오기 시작한다. 그의 존재가 뻐꾸기 소리가 되어간다. 신성을 향한 그의 열망, 사랑하는 님을 향한 그의 열망이 되어 간다. 그 순간, 관찰자와 대상이 하나가 된다. 아름다운 꽃이 활짝 피어나는 모습을 볼 때도 심미적인 사람은 꽃과 더블어 활짝 피어났다가 곧 그 자신이 꽃이 되어 간다. 심미적인 사람은 물과 같이 거침없이 흘러간다. 그가 하는 모든 경험속에서 그가 곧 경험이 되어 간다. 지는 해를 보면서 그가 곧 지는 해가 되어 간다. 어둠이 내리는 밤, 침묵이 깊어지는 밤, 그가 곧 어둠이 되어 간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그가 곧 아침 해가 되어 간다. 그는 삶, 그 자체이다. 모든 외딴 곳에서조차 그는 삶의 맛을 향유할 수 있다. 그러니 그의 삶이 풍족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풍족함만이 진정한 풍족함이다. 음악을 들으면, 음악이 되어가고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물 소리가 되어 가는 사람. 대나무 숲을 가르는 바람소리를 들을 때면, 그가 곧 대나무가 되고 스치는 바람이 된다. 대나무 숲 한복판에서 그는 한 그루의 대나무가 되어간다. 한 조각 바람이 되어간다. 한 선사가 대나무를 그리고 싶어하는 제자에게 말했다. “가서 먼저 대나무가 되거라.” 그는 각종 미술 경연대회를 석권한 바 있는굉장히 재능 있는 화가였다. 그의 이름은 이미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스승이 말했다. “숲으로 가서 몇 년간 대나무와 살도록 하라. 그리고 너 자신이 대나무가 되도록 하라. 네가 대나무가 되는 바로 그날, 다시 돌아와서 그림을 그리도록 하라. 그전에는 절대로 대나무를 그릴 수 없다. 대나무가 어떤 느낌인지 그 내면과 하나가 되지 않고서 어떻게 대나무를 그릴 수 있겠느냐? 겉으로 보이는 대나무를 그릴 수는 있겠지만, 그러한 그림은 사진과 별로 다를 게 없다.” 사진과 그림의 차이점. 사진은 절대로 그림이 될 수 없다. 아무리 기술적으로, 예술적으로 찍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겉모습의 반사체에 불과하다. 어떤 카메라도 영혼을 담을 수는 없다. 선사가 말했다. “숲으로 가거라.” 그리고 제자는 숲으로 가서 3년을 대나무와 살았다. 비가 오면 대나무는 기쁨에 떤다. 바람이 불면 대나무는 또다른 분위기에 빠진다. 해가 높은 날, 대나무는 또 다르다. 뻐꾸기가 대나무 숲을 찾아와 누군가를 부르기 시작할 때, 대나무는 침묵으로 화답한다. 제자는 그곳에서 대나무와 더블어 3년을 살았다. 그리고 어느날, 그 일이 일어났다! 대나무 곁에 앉아 있던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리고 대나무가 되어 버렸다. 바람이 불어오고 그는 대나무가 되어 몸을 바람따라 흔들었다. 자신이 대나무가 아닌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그는 대나무의 영혼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대나무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오쇼. 심미적인 사람에 관해 말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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