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운동 속에는 많은 분노와 좌절과 오해가 있다.
평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매우 훌륭한 항의의 편지를 쓸 수 있지만,
아직 사랑의 편지를 쓰지는 못한다.
그대는 미국의 대통령이나 의회가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는 대신,
또다시 읽고 싶게 만드는 그런 편지를 쓰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대의 말, 그대의 이해, 그대가 사용하는 언어가 외면당하게 해서는 안된다.
대통령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다.
평화 운동이 평화를 위한 길을 보여 주면서 동시에 사랑의 언어로 말하게 할 수는 없을까?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평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진정 내면에서 평화로울 수 있는가에 달린 일이라고.
만일 그대가 미소지을 수 없다면, 그대는 다른 사람을 미소짓게 할 수 없다.
만일 그대가 평화롭지 않다면, 그대는 평화 운동에 기여할 수 없다.
나는 우리가 평화 운동에 새로운 차원을 가져올 수 있기를 희망한다.
지금의 평화 운동은 분노와 증오로 가득차 있다.
그것은 결국 우리가 그들로부터 기대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게 만든다.
평화로움의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명상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바라보고 이해하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만일 우리가 평화 운동에 사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방식을 접목시킬 수 있다면 대단히 멋진 일일 것이다.
그것은 공격성과 증오를 크게 줄여 줄 것이다.
평화 운동을 하려면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평화로워야만 한다.
명상은 우리 모두를 위한 명상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의존해서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은 그들의 미래를 우리에게 의존하고 있다.
틱낫한 스님의, <평화로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