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息]/빈자의 양식

사는 재미

그러한 2008. 6. 28. 13:14

 


사는 재미

- 김지향


내가 사는 단층집
안마당 한 귀퉁이에는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반들반들
해꼬리와 어울려 앉아 있었다
그 장독 속에
손을 넣어 공통성을 뽑아내는
나는
간장.고추장.열무김치.파김치 쪽으로
후각을 열고 여자임을 느끼는
참맛을 맛보고 있었다
세상 번뇌를 젖히고
하얀 속살 일부를 드러낸 접시들이
잇달아 손끝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 옆에서 끓고 있는
남비 속의 도.레.미
아이들의 장난감 피아노 음계와
마주치는 쪽으로
청각을 열고 여자임을 느끼는
참맛을 맛보고 있었다
나는
내가 사는 단층집
대청 위에 앉아 오색 물감을 짓이기고 있는
작고 큰 키의 꽃분들이
짝눈을 깜박이고 있을 때
그 속에 눈을 넣어
나는
집의 평화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일제히 빛 속에 나와 인사하는
벽걸이의 순수와 만나는 쪽으로
시각을 열고 여자임을 느끼는
참맛을 맛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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