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息]/빈자의 양식

말하는 잎사귀

그러한 2008. 6. 28. 13:51

 

말하는 잎사귀

 

- 류시화

 


어젯밤 꿈속에
나뭇잎사귀 하나가 내게로 걸어와
내 귓가에 대고 말했다
자기는 말하는 잎사귀라고

자신의 나무에 대해
그 나무가 서 있는 대지에 대해
태양과 지빠귀 새의 노래와 곤충의 겹눈
그리고 그토록 많은 밤에 대해
말하는 잎사귀라고

 


그 잎사귀는 또 내게 말했다
나 역시 한 장의 말하는 잎사귀라고
자신에 대해, 또는 타인에 대해
매 순간 태어나는 것들과
매 순간 죽어가는 것들에 대해
말하는 잎사귀라고

어느날 나무에서 떨어져내려
그 반짝이는 가을 물살에 떠내려갈 때까지
그 흙에 얼굴을 묻을 때까지
우리 모두는 한 장의
말하는 잎사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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