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내 시내로 접어들어 정류장에 도착했다. 언제나처럼 먼저 숙소를 잡아야겠는데 쉽지않았다. 미리 생각해둔 호텔 두 군데를 모터사이클 택시를 타고 들러 봤지만 빈 방이 없다고 한다. 연휴를 바닷가 휴양지인 이 곳에서 보내려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크리비여인숙(Auberge de Kribi)에 짐을 풀었다. 하룻밤 지내기에는 무리가 없는 방을 3,500세파에 이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지금이
거리로 나오니 구운 옥수수가 맛있어 보인다. 점심식사를 대신해서 100세파를 주고 제법 큰 것을 사먹으니 맛있고 배도 불러온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작은 건물들이 차분하게 들어서있고 어딘지 정리되어있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 나오는데, 행정기관이 모여있는 구역이다. 어디에서나 관공서가 있는 구역은 나름대로 신경을 써서 관리하는 모양이다.
시청 앞에는 파이프라인사업(COTCO)의 착공기념비가 최근의 날자를 새긴 채로 한 쪽에 서 있다. 지금까지의 휴양도시로서의 이미지와 더불어, 긴 송유관의 종점으로서 앞으로는 경제중심도시로 거듭나고자 하는 지역민들의 염원이 느껴지는 것 같다.
행사가 있을 때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인 공회당(Salle de fête) 근처의 풀밭에, 말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풍경이 한가로워 보인다. 야운데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긴 부리에 파란색 깃털을 가진 예쁜 새가, 지렁이를 잡아서 전선 위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도 찬찬히 보았다. 주말이라서인지 이 곳은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고 텅 빈 것 처럼 느껴진다.
조금 더 걸어가니 해안초소처럼 생긴 곳이 나온다. 경비를 서던 군인이 심심하던 차인지, 길 안내를 해 주겠다며 괜히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으면서 붙들고 놔주지 않는다. 한참 이야기하다가 아래로 내려서니 모래사장과 바다가 나온다. 이 곳은 모래를 채취하는 곳인지 여기저기 모래를 퍼 낸 흔적이 보이고 바닷물도 그리 맑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사람들이 전혀 없어 호젓한 맛은 있어서, 잠시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명상(?)에도 빠져본다.
다시 길로 올라와서 얼마간 걸어가다 보니, 사람들이 해수욕을 즐기는 해변이 길게 펼쳐진다. 해변 모래사장을 따라 무심코 걸어가다 뜻밖에 아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야운데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젊은 교민부부 가족인데, 이 곳 생활을 정리하고 짐바브웨로 가게되어 고별여행 차 왔다고 한다. 가방에 있던 사탕 몇 개를 아기에게 건네주고 이내 헤어졌는데, 아직 젊고 좋으신 분들이니 어디에서든 잘 해내시리라 믿어본다.
해변을 따라서 크고 작은 숙박시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오래된 건물도 있고, 한 쪽은 공사 중인데 다른 쪽 객실에는 투숙객을 받는 곳도 보인다. 아름다운 대서양 바다와 부드러운 모래해변을 보고 있으니,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모래사장의 끝에 이르러서 다시 위로 올라왔다. 방향을 돌려 길을 따라 걸으니 주민들이 사는 마을이 오른쪽으로 길게 이어진다. 모든 관광지 주민들의 공통적인 운명이겠지만, 원래 그들의 것이었던 바다와 해변은 호텔과 관광객에게 내주고 정작 주인인 그들은 멀리 비껴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객들은 잠시 머물다가 떠날 뿐이라는 것을 잘 아는지 구태여 스스로를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집 마당에 모셔진 묘지 위에는 염소들이 차지하고 앉아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우물에는 도르래가 설치되어 있어 두레박을 올리기 쉽게 해 놓은 것이 돋보인다. 지금까지 다니면서 본 우물에서는 도르래를 본 일이 없어서 다시 한 번 보게 된다. 마을 사람들이 대소사를 의논하거나 축제 때 모이는 건물(Salle de groupement traditionelle)이, 전통적인 모습 그대로 신성한 공간으로서 마을의 중심을 지키고 있다. 이 곳에 원래 살던 사람들은 바탕가Batanga족이라고 한다.
계속 걸어가니 꽤 긴 다리가 놓여 있고 그 아래에는 물이 흐르는데 강물이라고 한다. 여기까지 흘러온 강물이 다리 아래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서 바닷물과 합쳐지는 것이다. 다리 위쪽에는 빨래하는 여인들이, 아래쪽에는 배에 목재를 실어내는 남자들이, 마치 바닷물과 강물을 대신해서 각자의 영역임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리 아래에는 배를 만드는 곳도 보이는데, 큰 나무의 속을 파내어 조각배를 만드는 모습이 무척 진지하다. 다리 옆의 언덕에는 큰 규모의 카톨릭교회가 서 있다. 시멘트로 지어져 있어서 건물 자체의 조형미는 많이 떨어지는 것 같지만, 화단이나 묘지까지 가지런히 잘 정리되어 있어서 종교건물이 주는 단아하고 경건한 느낌은 그대로 전달된다.
이 곳에도 농업기계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 트랙터를 파는 가게도 한두 군데 보인다. 돌아오는 길에 정류장에 들러 내일 여행할 예정인 에볼로바Ebolowa로 가는 차편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사실상 가장 큰 명절인 만큼 혹시 운행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는데, 다행히 평상시처럼 버스가 다닌다고 한다.
저녁밥은 제대로 먹어보려고 미리 점 찍어둔 곳으로 갔더니 웬일인지 문이 닫혀있다. 하는 수 없이 근처의 다른 곳으로 가서 생선과 감자튀김을 주문했는데 담백하고 맛있다. 바닷가에서는 역시 생선을 먹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맥주도 한 잔 하고 나니,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 숙소까지의 캄캄한 밤길도 별로 걱정되지 않는다.
숙소로 오면서 생수도 하나 샀다. 더운 공기를 몰아내주지는 못하는 것 같지만 객실 천정에는 선풍기도 달려있고, 화장실과 욕실이 바깥에 하나 있어 같이 이용해야 하지만 그리 불편하진 않다. 별로 할 일도 없으니 씻고 조금 쉬다가 10시쯤에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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