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食]/새우의 강

2001년 5월 21일(월) : 야운데로

그러한 2008. 7. 12. 12:53

 

2001 5 21() : 야운데로

 

- 흐리다 비, 야운데(1:46, 버스), 경비 3,150세파

 

급기야 새벽에 깨서 두 번이나 화장실에 가야 했다. 밖에서 계속 틀어대는 음악에 뒤척이다 겨우 잠들었는데, 아침에 늦게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미리 준비해 간 정로환을 먹어서인지 배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아 다행이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씻고 짐부터 정리했다. 문이 잠기지 않으니 배낭은 어제처럼 프런트에 맡기고 밖으로 나왔다. 식사를 조금이라도 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시장 근처의 식당에서 빵 반쪽과 커피를 주문했다. 거스름돈이 없다면서 150세파만 받고 25세파는 그냥 두라고 한다. 미안하기도 하지만 선의이니 만큼 그냥 받아들이기로 한다.

거리로 나와서 시내를 둘러보기로 한다. 지도를 보니 호수가 보이길래 그 쪽으로 먼저 방향을 잡았다. 조금 밖에 걷지 않았는데 이미 건물도 별로 보이지 않고 한적하다.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니 이내 꽤 넓은 호수가 나온다. 둘레로 나 있는 길을 따라서 걸으니, 깨끗해 보이는 물에는 고기도 제법 있는지 비릿한 냄새가 실려온다.

호수의 끝부분은 도시 진입로로 향하는 도로와 만나고 있다. 택시 운전사들이 호수 기슭에서 차를 닦고 있는데, 누가 아는 체를 해서 보니 어제 타고 온 택시운전사다. 잠시 앉아 쉬면서 들으니까, 길 건너편으로 들어가서 한참 올라가면 한국에서 지어준 고등학교 - Lycée Classique du Ebolowa – 가 있다고 한다. 흥미롭긴 하지만 약간 먼 거리인 것 같아서 다음을 기약하고 일어섰다. 사탕을 몇 개 건네니까 무척 좋아한다.

길을 따라 위로 올라가니 로터리가 나온다. 아마 여기가 이 도시에서는 가장 번잡한 곳인 것 같다. 도시 전체는 그리 넓지않고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도 대부분의 땅이 농토로 보인다. 도시 뒤쪽으로 그리 크지 않은 산이 듬직하게 보호해 주고 있는 듯한데, 그 산과 관련해서 에볼로바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 산에서 침팬지 – Ebol - 가 죽었다 – Wa – 고 하는 현지어가 합성된 것이라니 재미있다.

조금 더 올라가니, 왼쪽에 야운데행 버스정류장이 보여 차편도 알아 볼 겸해서 들어가보았다. 야외에 마련된 대합실은 천막으로 위쪽이 가려져 있고 소파도 갖춰져 있다. 날이 흐리더니 비가 제법 내리기 시작해서, 소파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있다보니 조금씩 잦아든다.

우산을 받치고 나서니까, 어제 식당을 안내해 준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던지 길안내를 자청한다. 혼자 걷고 싶어서 정중히 거절해도 한참을 따라오면서 말을 걸더니, 대답하지도 않고 그냥 걸어가니까 더 이상 따라오지 않는다. 어제 대해보니 그리 악한 사람 같지는 않지만 뭔가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 같아 부담스럽다. 주지사 집무실 근처까지 걸어갔다가 근처에 있는 공회당 등도 둘러 보고 호텔로 향했다.

 

방으로 와서 마지막으로 화장실도 이용했고, 이제 더 볼 일도 없으니 호텔을 나서기로 한다. 이미 정오가 지났지만 이제 야운데로 가는 일만 남았으니 그리 급할 것도 없다. 걸어서 아까 들렀던 버스회사(Arc-en-ciel Voyage)로 가서 차표를 끊었다. 요금이 1,500세파니까 2시간 정도 거리인 것 같은데, 차를 자주 타다보니 보통 이런 식의 추정이 맞아들어간다.

중년여인이 광주리에 이고 다니며 팔고 있는 삶은 옥수수를 사고, 스프라이트 한 병으로 목을 축이며 점심식사를 대신한다. 워낙 크고 알도 실하게 박혀 있는 것이어서 다 먹고 나니 배가 부르다.

야운데를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차편도 자주 있다. 우리가 탈 차가 도착해서 자리를 잡으니 이내 출발이다. 얼마쯤 가서 땅콩을 사면서 보니까 밤도 구워서 팔고 있다. 이렇게 항상 자연식품을 먹을 수 있어서 무척 마음에 든다.

통행요금소에서는 굼벵이 소야를 파는 아이들도 많이 볼 수 있다. 시장에서 살아있는 굼벵이를 파는 것은 자주 보았지만 저렇게 꼬치에 끼워서 파는 것은 여기서 처음 본다. 개인적으로는 선뜻 입에 넣게 될 것 같지 않지만,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임은 틀림없다.

한시간 반 정도 달렸는데 벌써 은시말렌 공항과 음발마요 분기점을 지났다. 15분 정도만 더 가면 정류장에 도착할 것 같다. 사실 야운데와 에볼로바 사이는 거리도 가깝고 도로도 잘 정비되어 있는 구간이다. 정류장에 도착해서 택시를 두 번 타고 집에 도착하니 아직 해가 높이 떠있다.

짐을 대강 정리하고 샤워를 하고 나니 동네가 잘 있는지 궁금해진다. 집 근처 골목을 다니며 산책을 하고 와서, 오랜 만에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여기 와서 2년 가까운 기간 동안 밥을 지어 먹다보니, ‘생존음식정도는 이제 순식간이다. 같이 사는 H단원도 두알라 여행을 다녀왔다며 오징어 한 마리를 내놓는다. 오랜만에 맥주를 기울이며 지난 일들을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걸 보니, 우리도 이 곳에서 조금은 성장했나 보다.

설거지를 끝내고 내친 김에 빨래까지 마저 해치운다. 베란다에 앉아서 밤거리를 보고 앉았다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