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識]/위빠사나(명상)

[수완스님]오온의 생멸 현상은 어떻게 바뀔까?

그러한 2008. 7. 18. 14:07

 

Q 오온(五蘊 다섯 가지 몸과 마음의 집합)이 함께 일어나는 모습의 예를 들면?

A 감각의 장(眼·耳·鼻·舌·身·意)과 그 대상(色·聲·香·味·觸·法)이 만나는 순간, 그걸 아는 마음인 식(識 viññāna)이 일어난다. 눈과 빛깔이 만나서 보는 마음(眼識)이 일어날 때 눈과 빛깔은 색(色 rūpa), 그 순간 즐겁거나 괴로운 느낌은 수(受 vedanā), 기억을 되살려서 그 느낌을 인식하는 건 상(想 saññā)이고 찰나 보려는 마음이 행(行 saṅkhārā)이다. 눈으로 빛깔을 보는 순간 좋거나 싫은 마음이 이는 것은 필연이 아니다. 원인에 따른 현상일 뿐이다. 그걸 알고 있으면 그런 마음이 아예 일지 않는다.

  숨쉴 때는 마음(識)이 숨으로 향해서(行) 호흡(色)의 느낌(受)이 인식된다(想). 이 책을 볼 때는, 주의를 글로 기울여(行)(色)과 활자(色)가 만나는(行) 순간, 느낌을 받아들여(受) 기억 속에서 유사한 느낌을 자동으로 검색(想) 출력(行)해낸 다음 비교(識) 분석(想)한 후에 재등록한다(行). 자아의식(識)이 느낌을 받아들여서(受) 조사(想) 결정(行)한 걸 도로 의식(識) 속에 저장하는 것이다(行). 이런 일련의 행위를 아는 마음(識)은, 이처럼 대상(色)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접촉해서(行) 그 느낌을 받아들이는(受) 즉시 표상 작용(想)을 일으킨다(行). 이때도 기분 좋다(行)고 판단(識)되는 감각(受)만을 갈망(行)하고 추구(行)하는 오온의 불안정한 흐름이 12연기다. 의식의 순환 고리인 12연기는, 수행자가 제때에 적절한 힘으로 작용하는 의식 제어 프로그램을 미리 알고 있기 때문에, 모든 조건지어진 것은 무상해서 불만스럽고 거기에 영원한 실체가 없다는 걸 분명히 알게 될 때 절로 끊어진다.


Q 한 동작에서 오온과 삼법인(三法印 현상의 세 가지 본성)이 보이는 예를 든다면?

A 내가(識) 말하려고 할(行) 때는 몸(色)의 느낌(受)이 있다. 그걸 인식(想)하는 순간 생각이 떠오른다(行). 이 일련의 과정을 다 아는 마음(識)이 있고. 이렇게 말하려는 의도를 알아채기만 해도 오온이 한꺼번에 보인다. 그러나 하려는 말 대신 다른 말이 튀어나오는 데서 무상(無常)을 보게 되고, 말한 후 기분이 좋다가도 조금 지나면 그 느낌이 사라져서 아쉽고 서운하고 애석한 느낌들이 고(苦)의 모습이며, 그 느낌을 거꾸로 되살리고 싶어도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게 무아(無我)이다.


Q 오온의 생멸 현상은 어떻게 바뀔까?

A 오온은 끊임없이 함께 일어나고 사라지는데, 그중 두드러지게 드러난 현상이 눈에 뜨인다. 그걸 순차적으로 설명하면 처음엔 의식이 접촉(phassa), 느낌(vedanā), 인식(saññā), 의도(cetanā), 일념집중(ekaggatā), 생명의 힘(jivitindriya), 작의(作意 manasikāra)와 함께 일어나는 순간, 정진과 마음 챙김과 삼매의 힘이 적절히 작용할 때 평등심인 관(觀)으로 바뀐다. 이렇게 오온의 변화를 계속 비추어봄으로써 마음의 눈은 열리고, 그에 따라 자의식은 점차 약해지다가 있는 그대로 보이는 순간 관만 있다.


Q 인터뷰 도중 사야도(sayadaw 큰스님)가 어떻게 보이나?

A ① 선한 파장이 느껴지는 가운데 이 만남이 헛되지 않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서로의 마음 사이에 연기(緣起)의 작용을 보며 당신에 대한 선입견 없이 설법을 들으려고 애쓰지만, 오온의 생멸 현상만 보인다. 당신은 법을 설하는 법기(法器)이고 난 관객이다. 우린 불성(佛性 깨침의 씨앗)을 공유하고 있는데도 나는 아직 당신의 진면목을 보지 못해 보이는 만큼 존경할 뿐이다.

  ② 티베트에서는 스승을 붓다로 모시면 붓다의 가르침과 축복을 받게 된다고 한다.


Q 자기를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으며, 마땅히 자기에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기 위해선 무엇을 수행할까?

A 4념처(satipaṭṭhāna 몸·느낌·마음·법을 완전히 챙김)를 수행한다. 명상으로 깨어 있는 마음과 선정을 계발하여 스스로 절제함으로써 담마에만 의지하고 다른 어느 것에도 의지하지 않는다. 수행을 하려는 탐심(貪心)과 수행이 안 된다는 진심(嗔心)과 수행이 잘 된다는 치심(癡心)을 다스릴 때는 4념처(四念處)에다 자애 명상을 곁들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