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열게 하는 요정의 질문
이 기술은 다섯 가지 질문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것을 기억하는 좋은 방법은 <엘프(ELFE) 식의 질문(Q)>을 던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동화책에서처럼 엘프(ELFE, 스칸디나비아신화에 나오는 바람, 불, 땅의 요정)가
평범한 일상을 마법의 순간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
<Q>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뜻한다. 고통당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무슨 일을 겼었는지를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었죠?"라는 질문에 상대는 상황을 설명할 것이다.
일어난 일을 자세하게 알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중요한 것은 가장 적게 간섭하면서, 적어도 3분 동안, 되도록 3분을 넘지 않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어쩌면 이 시간이 무척 짧다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평균적으로 정신과 의사들은
18초 정도 있다가 환자의 이야기에 개입한다.
3분이 넘게 되면, 상대가 너무 자세히 이야기하는 데 몰두하게 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요점에 접근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 그 자체보다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빨리 더 중요한 두번째 질문으로 넘어가야 한다.
<E>는 감정을 뜻한다. 재빨리 "어떤 느낌이었어요?"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종종 이런 질문이 별 의미가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방법을 1999년의 공포를 경험했던 코소보의 일반의사들에게 가르쳤다.
어느날, 그 의사들 중 한 명이 여자 환자와 상담을 하게 되었는데,
그녀는 항상 머리, 등, 손이 아프고, 잠도 잘 자지 못하고 살이 너무 빠진다고 호소했다.
그 의사는 당연히 머릿속에 매독에서부터 심장판막경화증까지
의학백과사전에 적혀있는 모든 질병들을 떠올렸다.
나는 그에게 귓속말로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라고 질문해보라고 충고했다.
단 몇초도 안 되어서 그녀는 2주전에 세르비아 유격대들에게 납치당한 남편으로부터
소식이 전혀 없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남편이 아마 죽었을 거라고 말했다.
그녀의 일은 그 나라에서는 너무나 흔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나눌 상대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때 당연히 그녀가 느끼고 있는 고통에 대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의사는 두번째 질문을 하는 것을 머뭇거릴 수 밖에 없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질문을 한다는 자체가 오히려 모욕적인 말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그렇게 하라고 충고했다. 그는 아주 힘들게 그 질문을 했다.
"... 그 일이 있었을 때 기분이 어떠셨죠?" 바로 그때, 그녀는 눈물을 쏟아내는 것이었다.
"정말 끔찍했어요. 무서웠어요... " 의사는 그녀의 팔을 붙들고 조금 울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녀도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 다음 단계의 질문들을 계속할 수 있었다.
<L>은 가장 어려운 문제라는 뜻이다. 감정에 휩싸이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고통의 중심까지, 그 근원에까지 빠져보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물의 표면으로 나올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은 힘든 상황에 놓여있는 상담자를 생각할때 상대를 고려하지 않은 질문이거나
'무례한 질문'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질문 중에서 가장 효력이 있는 질문이다.
"무엇이 당신을 가장 힘들게 하죠?" 그녀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것이 그녀에게는 가장 힘든 일이라고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나야, 오래 전부터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어요.
남편하고도 여러 번 이야기를 했고요. 하지만 아이들은...
내가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러더니 그녀는 조금 전보다 더 서럽게 통곡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남편이 행방불명되어 두렵다고 털어놓았을 때
그렇게 대답하리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너무도 명백하게 그녀의 두려움은 아이들을 향한 것이었다.
만약 그녀에게 이렇게 묻지 않았다면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질문 <L>은 고통당하는 사람의 정신을 한 곳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신비롭게 여겨진다.
이것은 흩어져 있는 생각들, 다시 말해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들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정신을 한곳으로 집중하지 않으면 자기 마음대로 여러 방향으로 달아나버린다.
나 역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뒤,
힘든 시기를 지내고 있을 때였다. 매일 저녁, 혼자 지내곤 했는데 몸 전체가 아픈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울지는 않았다. 많은 남자들이 그러하듯 나도 이를 악물고 앞일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마음이 상처받았다고 삶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할 일이 쌓여 있었다.
어느날 저녁, 한 친구가 내 소식이 궁금하다며 연락을 했다.
아무 해결책도 없는 내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소아과 의사였던 그녀는 엘프(ELFE)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내게무엇이 가장 힘들게 하냐고 물었을 때, 나는 눈앞에 하나의 장면이 떠올랐다.
내 방을 새로 꾸밀 때 아들이 도와주었던 장면이.
아들은 슬퍼보였고, 약해보였지만 나는 이를 꽉 깨무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별다르게 아들을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그 생각을 떠올리자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는 것이었다.
혼동스럽게만 여겨졌던 슬픔의 정체가 갑자기 한 곳으로 집중되면서
나를 눈물과 통곡 속에 고스란히 놓아두었다. 잠시 후 나는 기분이 훨씬 좋아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해결된 것은 없었지만 적어도 이제 그 고통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 있었다.
아들의 고통은 여전히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F>는 도전을 뜻한다.
모든 감정을 드러내고 나서 이제 에너지가 문제의 근원에 집중된 것을 이용해야한다.
"당신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떤 것이 가장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죠?"
이 질문을 통해 우리는 상대의 관심을 그가 이미 가지고 있던 근원적인 힘으로 돌리게 함으로써
스스로 추스리고 헤어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누구나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헤쳐나올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 힘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다시 좌절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우리가 그들을 대신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사람들은 강한 정신력과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이 사실을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을 뿐이다.
우리 역시 자신의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고 잘 견뎌내는 것처럼.
나는 학생들에게 우리 역시 각자의 관계 속에서 배워야 한다고 가르쳤다.
누군가 자신의 고통을 호소할 때 '그러고 있지 말고, 뭔가 좀 해봐!' 라고 스스로를 다그치는 대신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대로 듣고만 있자!'라고 타일러야 한다.
왜냐하면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역할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할은 해결책을 찾아 이것저것 제안하거나 힘에 부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보다
상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것이다.
코소보의 알바니아 여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언니와 이웃들도 모두 같은 형편인데, 아이들한테 참 잘 대해줘요." 그녀가 대답했다.
물론 이것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당장 자신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좀더 명확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절망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아들과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이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사실을 인식한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처럼,
게다가 멀리 살고 있지만 그대로 내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좋은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도움이 되었다. 나는 당장 그날 저녁,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렇게 해서 일 주일에 여러 번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하면서 외로움을 치유할 수 있었다.
<E>는 감정이입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결론을 짓는 단계에서 무엇보다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낀 것을 진실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 동안 상대의 짐을 함께 나누었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야기가 끝나면 그는 자신의 문젯거리를 안고 혼자 남게 된다.
하지만 같이 이야기하는 동안만큼은 함께였고, 상대의 고통울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기억 덕분에 그는 혼자 남게 되어도 덜 외로울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간단한 몇 마디면 충분하다. "힘드시겠어요."
혹은 "당신이 그런 일을 겪는 걸 보니 정말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요.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아이들은 작은 '상처'만 나도 엄마에게 달려오는데,
때로는 어른들보다 이런 상황을 더 잘 이해하는 것 같다.
물론 엄마라고 아픈 것을 낫게 해줄 수는 없다.
엄마는 의사도 간호사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지 아이들은 아픈 것보다 외로운 것을 치유받고 싶은 것이다.
고통당할 때 외로움을 덜고 싶어하는 것은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코소보의 여자 환자가 15분 동안 상담을 받았다고 완치되어서 병원문을 나갈 수는 없다.
하지만 그녀는 더 강해졌고 , 덜 외로워했다.
그리고 의사는 그녀에게 쓸데없는 검사를 실시하거나 약을 처방해준 것보다 더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내가 코소보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처럼(알바니아인과 세르비아인까지) 그들 역시 고통당하고 있었고,
진료실을 나간 여자 환자처럼 감정적으로 약해져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상담한 의사를 보면서 나는 그 역시 많이 좋아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좀더 여유 있어 보였고, 더 자신이 있어 하는 것 같았다.
마치 잠시의 진료시간이 의사와 환자 모두를 좀더 성숙하게 해준 것처럼.
의사와 환자 둘 모두 나름대로 각자의 위엄성을 되찾은 것 같아보였다.
그녀와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좀더 인간적인 따뜻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스스로도 치유된 것 같아 보였다.
이처럼 상담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 바로 '치유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의 감정뇌는 스스로 많이 진보한다.
이때 좀더 자신감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데,
바로 이와 같은 자신감이 우리를 불안증세와 우울증에서 보호해준다.
- 다비드 세르방-슈레베르, <치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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