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息]/빈자의 양식

당신과 가는 길

그러한 2008. 9. 9. 14:31

 

별빛이 쓸고 가는 먼길을 걸어 당신께 갑니다.

모든 것을 다 거두어간 들판이 되어

길의 끝에서 몇 번이고 빈 몸으로 넘어질 때

풀뿌리 하나로 내 안을 뚫고 오는

당신께 가는 길은 얼마나 좋습니까

이 땅의 일로 가슴을 아파할 때

별빛으로 또렷이 내 위에 떠서 눈을 깜빡이는

당신과 가는 길은 얼마나 좋습니까

동짓달 개울물 소리가 또랑또랑 살얼음 녹이며 들려오고

구름 사이로 당신은 보입니다.

바람도 없이 구름은 흐르고

떠나간 것들 다시 오지 않아도

내 가는 길 앞에 이렇게 당신은 있지 않습니까

당신과 가는 길은 얼마나 좋습니까

                          

 

 

- 도종환, <당신과 가는 길>

 

 

'[쉼-息] > 빈자의 양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언덕에 바로 누워  (0) 2008.09.09
저녁 무렵  (0) 2008.09.09
직녀에게  (0) 2008.09.09
누더기별  (0) 2008.09.09
꽃밭을 바라보는 일  (0) 2008.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