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息]/빈자의 양식

귀뚜라미

그러한 2008. 9. 11. 13:11

 

   귀뚜라미

 

   - 나희덕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소리에 묻혀
   내 울음 아직은 노래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계단을 타고 이 땅 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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