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息]/빈자의 양식

바느질

그러한 2013. 9. 14. 14:04

 

바느질

 

- 이오덕

 


나는 요즘 바느질 하는 맛을 들였다
단추를 단단하게 고쳐 달고
속옷 안 맞는 것도 줄이거나 기워서 입는다
양말을 밑바닥에 질긴 천을 대놓으면
신기가 좋고 발이 편하다
등산 양말 떨어진 것은
아주 잘라 버리고
긴 목을 두개 이어 붙이면
정갱이고 무릎이 따뜻해서 좋다
수건을 두 장 석 장 포개어 누벼 놓으면
배덮개도 되고
방석도 되고
덧버선을 만들 수 있다
그걸 누비면서
열십자 수를 놓기도 하고
별표를 만들기도 하고
날아가는 새도 그린다
어젯밤에는 자다가 눈이 떴는데
바느질이 하고 싶어
그만 이른 새벽에 일어났다
한 땀 한 땀 꿰매는 재미가 글쓰기보다 낫다
이런 행복을 몰랐으니 참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바보로 살았나
세상의 여자들이 어째서 남자보다
더 끈질기게 더 오래 사는가 했더니
그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나는 내 닳아빠지고 갈기 갈기 찢겨 버린
몸과 영혼까지도 한 땀 한 땀 소중이 꿰매면서
꿰매는 정성으로 기쁨으로
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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