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바로 추측일 뿐입니다.
절간의 종소리를 들었을 때, 갑작스럽게 실체를 느꼈다고 했지만,
아까 선생도 말했듯이 이제 그것은 기억일 뿐입니다.
그것으로부터 선생은 지금 그러한 실체가 분명히 있다는, 하나의 결론을 이끌어 낸 것이지요.
실체라는 것은 참 특별한 어떤 것입니다.
그것은 선생이 그것을 쳐다보지 않을 때에 있는 것이거든요.
선생이 그것을 쳐다보게 되면, 탐욕으로 말입니다,
잡히는 것은 그 탐욕의 앙금이지 실체가 아닙니다.
실체라는 것은 살아 움직이는 것이어서 잡아 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항상 거기에 있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지요.
오로지 고정되어 있거나, 머물러 있는 것, 고착화 된 것들만이, 그 쪽으로 가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살아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기에 머무는 곳이 없는 것에 무슨 안내자가 있겠으며,
어찌 거기로 다가가는 길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게도 그것을 얻어내려고, 잡아채려고 열성이기 때문에,
그것을 죽은 것으로 만들어 버렸지요.
자, 그러니 선생에게 있었던 그 상태에 대한 기억을 치워버릴 수 있겠습니까
가르쳐 줄 사람이니, 다다르는 길이니, 목적이니 하는 것들이
전부 다 싹 치워져서는 선생의 마음이 텅 비어 있을 수 있겠어요
지금 상태에서 선생의 마음은, 끓어오르는 욕구에 갇혀 있기 때문에,
바로 그게 장해가 되어 있는 겁니다.
선생은 지금 피안으로 가는 길을 찾아다니고, 묻고 바라고 있습니다.
피안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여기에 차안이 있고, 차안에서부터 피안으로 간다는 것이어서,
시간과 공간이 있다는 것이거든요.
선생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차안으로 가기 위한 고통에 휩싸여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게 문제지요.
시간으로 쪼개지고 공간으로 나누어지는 것 말입니다.
그 곳으로 가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며,
차안과 피안 사이에 공간이 있다는 말이거든요.
그것은 여기에 있으면서 저렇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인데,
그 사이의 거리 때문에 그게 불가능하다고 해서는,
그 거리를 매우는 시간이 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이런 상태에는 비교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측정도 작용합니다.
그리고 측정할 수 있는 마음은 또한 환상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거든요.
이렇게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시간과 공간으로 분열되는 것이 바로 마음의 속성이요,
그게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사랑이 있을 때에 공간은 사라지고 시간도 사라집니다.
오로지 생각과 욕망이 일어날 때에만이,
그 사이를 메꾸어야 하는 간극이 생기는 것이지요. 이것을 이해하신다면, 그게 바로 그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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