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識]/위빠사나(명상)

[아짠차 문답] 의혹이 일어날 때는 어떻게 합니까?

그러한 2008. 5. 17. 14:32

 

      의혹이 일어날 때는 어떻게 합니까? 어떤 날은 수행 자체에 의혹을 품게 되고, 자신의 계발이나 스승에 대한 의심으로 괴로워지기도 합니다.

 

      의혹을 품는 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사람들은 으레 의혹을 품은 채로 수행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의혹을 품는 가운데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의심하는 마음을 자기 자신이라고 착각하지 않는 것이지요. 즉 의혹은 가지되 사로잡히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끝없이 맴돌게 할 테니까요. 그 대신 의혹을 느끼고 방황하는 과정을 빠짐없이 지켜보십시오. 의심하는 자가 누구인지를 보십시오. 의심이 어떻게 와서 가는지를 보십시오.

그리하면 자신이 의혹 때문에 희생당하는 일은 없게 될 것입니다. 스스로 의심에서 빠져 나와 마음이 가라앉게 되면서, 모든 일이 어떻게 일어나 사라지는지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집착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놓아 버리십시오. 의심하는 마음을 놓아 버리고 다만 지켜보기만 하십시오. 이것이 의심을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욕망과 성냄 같은 번뇌는 환()입니까? 아니면 실체입니까?

 

      양쪽 다입니다. 우리들이 탐· 진· 치라고 부르는 번뇌들은 표면상 나타난 이름과 모양들입니다. 그것은 마치 발우를 보고 크다, 작다, 예쁘다 하는 것과 같지요. 큰 발우를 원하는 사람은 기존의 발우를 보고 작다고 할 것입니다. 갈애 때문에 우리는 그런 개념들을 만들어 냅니다.

갈애는 차별심을 일으키지만, 진리는 그저 있는 그대로일 뿐이지요. 예를 들어 봅시다. 그대는 남자입니까? 그렇다고요? 그것은 사물의 겉모습일 뿐입니다. 그대라는 존재는 실상 원소들의 결합, 즉 변화하는 집합물의 모임일 따름입니다. 해탈한 마음은 차별심을 내지 않습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고,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것을 ‘아나따(anatta)즉 무아라고 합니다.

하지만 궁극에는 아()도 없고 무아(無我)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