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장기간의 묵언 용맹정진을 제자들에게 권하시는지요?
답 그것은 매우 개인적인 문제입니다. 수행자는 시장 한가운데서든 아주 외딴 곳에서든,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수행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만 처음에는 조용한 곳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겠지요. 우리가 숲 속에서 사는 이유 중 하나가 거기에 있습니다. 처음에는 천천히 진행시키면서 마음챙김을 유지하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어느 정도 지난 다음에는 어떤 상황에서든 마음챙김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어떤 이는 6개월이나 1년 정도 묵언 용맹정진을 하는 게 어떤지를 묻습니다. 여기에 어떤 정해진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기간은 개인에 따라 다르게 정해져야 합니다.
스승과 제자는 함께 수행의 가능성과 한계성에 대해 세심하게 알아봐야 합니다. 이러한 수행을 할 각오가 되어 있는지, 지금이 적당한 시기인지 등을 면밀하게 따져 봐야 합니다. 그대 자신의 한계를 파악해 참작하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 또한 지혜입니다.
묵언수행 중이 아니더라도, 수행자는 항상 말을 삼가해야 합니다. 꼭 해야 할 말 외에는 가급적 말을 삼가십시오. 계를 받은 사람은 잡담이나 사교에 흥미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훌륭한 선원을 찾아 내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대부분의 승려들이 불교를 연구 대상으로 여길 뿐, 실천적 수행을 하지 않습니다. 도처에서 마음을 닦는 일보다는 숲을 베어 내 절들을 새로 짓는 일에 더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예전의 선사(禪師)들은 자연을 벗삼아 살아갈 뿐 절을 짓는 일 등은 하지 않았습니다. 요즈음은 법당 불사를 하는 일이 신도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끄는 종교 활동이 되었습니다. 그런대로 좋은 일이지만, 절을 건립하는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승려의 일과 가운데 80~90%이상은 수행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그 나머지 시간은 일반 대중들에게 이로움을 회향시키는 데 쓰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에도 대중을 가르치는 사람은 그 자신을 통제할 수 있어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며, 자신의 짐도 무거워 쩔쩔매는 사람이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스승이 때때로 들려 주는 법문은 수행자들이 마음 상태와 향상도를 점검하는 기회로 유념해야 합니다. 법문의 요점들은 수행을 통해 확실히 다져야 할 중요한 사항들입니다. 그대는 자신 속에서 그런 요점들을 스스로 알아볼 수 있습니까? 지금 제대로 수행을 하고 있는가? 잘못을 범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갖고 있는가? 스스로 알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그런 것들을 가르쳐 줄 수 없습니다.
남의 말을 듣고 의혹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의혹을 없애는 유일한 길은 자기 힘으로 영원히 잠재워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리적으로 단절되어 있는 숲 속 생활의 이익을 마음챙김을 닦는 데 써야만 하며, 고립이나 도피를 목적으로 오용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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