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食]/새우의 강

한인회誌 기고문

그러한 2008. 7. 12. 13:10

 

한인회誌 기고문

 

 

우물물이 내게 일깨워준

 

어느새 이 곳 카메룬에 온 지도 삼 개월여 되어간다. 처음 도착했을 때의 괜한 설레임과 약간의 두려움은 어느 정도 가셨다 하더라도, 생활에 완전히 적응하였다고 하기에는 아직까지 낯선 것이 많다. 주어진 이 년의 활동 기간을 다 보내더라도 이 나라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그 과정에서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으면 하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까?

'아프리카'라는 대륙이 지니는, 다소 막연하게나마 자연과 인간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는 미지의 세계를 상상했던 나에게, 처음 야운데는 약간 실망스러운 모습이었다. 물론 수도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일상의 번잡함을 벗어나 보고자 떠나 온 나에게, 또 다른 번잡한 도시에서의 생활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람 사는 모습이라는 것이 결국은 이런 것이 아닌가라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니 그리 손해 본 것은 아닌 듯 싶다.

이 곳에 와서 가장 곤란을 겪은 것은 단연 '' 문제였다. 야운데의 수도 사정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까지 물이 나오지 않을 때는 정말 화가 나기도 하지만, 어쩌랴! 그런 부분까지 내가 껴안아야 할 몫인 것을. 생활 자체가 간소하므로, 먹을 물은 최소한으로 사서 먹는다 하더라도 당장 씻을 물이 없고 빨래를 할 수 없을 때의 그 당혹함이란...그렇다고 문명(?)의 나라에서 온 내가, 안 씻고 빨래를 빨아 입지 않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결국 단수 일주일째, 받아 놓은 물마저 바닥을 보이고 언제 물이 나온다는 기약도 없는 상황에서 더 이상 앉아 기다릴 수 만은 없기에 나는 동네 근처로의 '우물 탐험'을 나서게 되었다. 하지만 탐험은 싱겁게 끝나서, 첫번째로 만난 아리따운(!) 현지인 아가씨에게 근처에 우물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니 자기집에 있다면서 도리어 어떻게 우물이 있는 것을 알았느냐고 반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친구들과의 가던 길을 거기에서 작별하고 친절하게 자기 집으로 앞장서서 안내해 주기까지 했다.

그 날 또 다른 현지인의 도움을 받으며 채워 넣은 'TANGUI' 열 병의 우물물은 가뭄 아닌 가뭄(!?)으로 몸보다 먼저 말라가던 내 마음을 우물물 만큼이나 촉촉이 그리고 깨끗하게 적시어 주었다. 나를 더욱 감동시킨 것은, 내가 얼마의 돈을 주면 되겠냐고 묻자 '친구'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돈은 받지 않겠다는 것이며, 고마움의 표시로 준비해 간 사탕을 주자 아이들을 먼저 불러서 나누어 주는 것이었다. 당연히 돈으로 값을 치루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한 문명인(?), 비록 가난하지만 착한 심성을 가진 문화인(!)들이 부끄럽게 하였던 것이다.

물은 또 끊어질 것이고, 그러면 나는 또 그 곳을 찾아갈 것이다. 그 때마다 그들이 변함없이 맑은 심성으로 나를 대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곳에서 활동하는 이 년의 기간이, 이 곳의 수돗물처럼 탁하고 불합리한 부분을 원래의 깨끗한 우물물과 같이 바꾸는 데 작으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물론 그 시작은 내가 지니고 있는 하잘 것 없는 지식으로 부터가 아니라, 사람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부터임을 다시 되새겨 본다.

(1999년 10월 22)

 

아이들과 시간을 같이 하며

 

모든 일들이 그러하듯이 그 일 또한 그렇게 갑자기 다가왔다. 모든 일들이 그러하듯이 그 일 또한 이미 심중(心中)에 예감하고 있던 중에 찾아왔다. 모든 일들이 또한 그러하듯이 그 일 또한 기대 반 두려움 반의 두 얼굴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내게 맡겨진 한글학교 교사로서의 과업(課業)이 그것이다.

지난 10 2, 지금은 한국으로 떠나고 없는 협력의사 닥터 신의 집에서 한인회 김 이사님으로부터야운데 한글학교의 개학소식을 전해 들었고, 그 날 오후의 학부모 및 교사 회의에서 중등반을 맡게 되었다. 그간 여러 자리에서 한글학교에 대해서 들은바 있고 또한 만약 내게 그 일이 맡겨지면 열심히 하겠노라고 다분히 일반적인 수준에서 말한 적이 있지만, 막상 그 일이 현실로 다가오고 보니 걱정부터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과연 내가 저 아이들에게 줄 만한 꺼리를 가지고 있나?’ ‘어떡하면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한 시간으로 채워갈 수 있을까?’ 마음 속에 이러한 의문을 가진 채 그 다음 주 첫 수업에 임하게 되었고, 의문부호는 아직도느낌표로 바뀌지 않았다.

내가 맡은 반의 학생은 세 명이다.

한내. 현재 ‘Rain Forest International School’ 11학년에 재학 중이고, 두 살 때 이 곳 카메룬에 왔다고 한다. 수업시간에 그 눈빛만으로도 교사의 교수(敎授) 충실도를 가늠케 해준다. 관진이. 마찬가지로 ‘Rain Forest International School’ 9학년에 재학 중이고, 두 살 때 이 곳 카메룬에 왔다. 수업 시간에 적절한 질문과 대답으로 교사를 많이 도와 주지만(본인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여러 가지에 관심이 많아서 수업이 딴 길로 새게 만드는 주역이기도 한다. 희진이. ‘Ubangi Academy’ 8학년에 재학 중이며, 생후 8개월 째 이 곳 카메룬에 왔다. 언어 교육은 보다 어릴 때, 보다 집중적으로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추측케 해 주는 표본이다.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서 새삼 그 부모님들께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들 어린 나이에 해외에 나와서, 또래 집단과의 놀이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언어를 익힐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한 상황에서도 지금처럼 한글로 잘 말하고, 읽고, 쓸 수 있다는 것은 - 물론 한국의 같은 또래 아이들에 비해서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만 - 전적으로 가정에서의 부모님들의 지극한 노력에 기인한다는 생각에서이다. 만약 내가 그러한 상황이었다면, 지금 아이들과 같은 수준의 한글을 구사할 수 있었을까? 아마 모르긴 해도 지금 아이들 보다 더 낫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가 부모님의 의지에 따라 아이들이 무조건 한글을 익히며 그 기초를 다지는 기간이었다면, 이제는 아이들 스스로의 의지 여하에 따라서 그 수용의 폭이 좌우되리라 생각된다. 언어는 단지 의사 소통의 도구로서가 아니라, 자기 정체성의 확립, 내가 속한 집단 문화(포괄적인 의미로서의)의 이해·계승 도구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고 본다. 마땅히나는 누구인가? 왜 한국인인가?’ ‘왜 나는 한글을 배우는가?’ ‘그것이 내게 어떤 의미인가?’ 라는 질문부터 자신에게 던져야 볼 일이다.

끝으로, 일반적으로 일컫는 재외국민 한글학습법 중 일부를 인용해 본다. “입으로 말하는 연습, 귀로 듣는 연습, 눈으로 읽는 연습, 손으로 쓰는 연습 모두를 균형 있게 공부한다. 이를 위해서는 매일 가정에서 가족들과 대화할 때는 항상 한국어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공부 방법이 될 것이다.” 교사로서 이 과정에서 충실한 도움이의 역할을 다할 것을 다짐해 본다.                                                                                                  (1999년 11월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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