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食]/새우의 강

떠나오던 날

그러한 2008. 7. 12. 13:06

 

떠나오던

 

 

2001 7 21() 맑음

 

활동기관에서의 근무는 그저께 끝이 났다. 무거운 짐은 이미 화물로 보냈고 가져갈 짐도 다 싸놓았다. 남기고 갈 것은 남겼고, 주고 갈 것도 필요한 사람들에게 모두 주었다. 이제 저녁에 비행기만 타면 되는데 도무지 떠난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떠나게 되어서 좋은 것도, 떠나기 싫은 것도 아닌 이런 기분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오전에는 시내를 돌며 교민들을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그 동안 봉사단원으로 와 있는 이유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지냈지만, 모두들 하시는 일이 다 잘 되시기를 바랄 뿐이다. 남은 시간에는 한국에 가져갈 선물을 고르려고 공예품시장으로 갔다. 그 동안 하루하루 미루다가 오늘에야 온 것인데, 막상 와도 무엇을 사야 할지 모르겠다. 목각인형과 열쇠고리 몇 개를 샀는데도 돈이 남아서 집으로 오는 길에 담배 몇 갑을 더 보탰다.

K박사님 댁에서 점심을 대접받고, 오후에는 마지막으로 근교의 고아원에 같이 갔다. K박사님부부와 후배 단원들이 주말에 활동하는 곳인데, 두 번째로 오니 아이들이 제법 아는 체를 한다. 바람개비를 만들어서 들고 달리기도 하고, 축구도 같이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준비한 간식을 전달하고 진료하는 과정 등도 지켜보았다. 나눠준 구충제와 사탕을 들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니 마음이 조금 밝아진다.

집에 있다가 다섯시 반에 K박사님이 운전해주신 차를 타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사모님, H단원과 , 후배단원 명이 같이 타고, 다른 단원 3명과 코피온 단원은 아우두 씨가 운전하는 차로 뒤를 따랐다. 가는 길에 우연히 명예영사인 다보 씨와 마주쳐서 작별인사를 했다. 활동기관에 공여되는 물품 관계로 남은 감정도 이제는 지워버려야겠다.

여섯 시에 공항에 도착해서 곧바로 탑승수속을 밟았다. 수화물 검사과정에서, 남은 돈으로 사넣었던 생수 3병을 확인하느라 꺼내보인것 외에는 탈없이 금방 끝났다. 조금 남는 시간에 다같이 음료수를 마셨는데 한인회 총무께서도 나와주셔서 무척 고마웠다. 탑승대기장에 들어가기 전에 기념촬영을 하고, 포옹과 악수로 작별을 고했다. 떠나는 소감을 묻길래, 소리로 시원섭섭하다, 말했지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여덟 시에는 기내로 들어갔고, 40 지나서 비행기가 이륙했다. 얼마 보이지 않는 야운데 불빛이 점점 멀어지고, 20 후에 두알라에 도착했다. 승객들을 태우고 한참을 기다렸다가, 10 45 다시 이륙했다. 11 15 기내식을 먹고 12에는 잠으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카메룬을 빠져나왔다.

 

시간 후에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프랑스의 하늘 위에 있었다. 지난 2 동안의 하루하루가, 마치 방금 꿈에서 것같이 선명하면서도 아득한 일로 느껴진다. 장자가 나비의 꿈을 조금은 같다.

언젠가 장주는 나비가 꿈을 꾸었다. 훨훨 날아 다니는 나비가 유쾌하게 즐기면서도 자기가 장주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문득 깨어나 보니 틀림없는 장주가 아닌가. 도대체 장주가 나비가 꿈을 것인가 아니면 나비가 장주가 꿈을 것인가.”

- [1]장자 내편 제물론에서



[1] 윤재근, 장자-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말라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