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는 BC 3세기경 아쇼카 대왕에 의해 불법이 전파된 이후 천오백여년 간 찬란한 불교문화의 꽃을 피웠다.
그러나 고인 물은 썩듯이 각 왕조의 비호 아래 번창하고 세속보다 더한 영화를 누리던 승단은
스스로 타락하고 분열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멀어져갔다.
16세기 이후 나라의 운명은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손에 차례차례 넘겨졌고
이들 국가로부터 수세기 동안 식민 지배를 받아오면서 접하게 된 근대문화와 앞선 경제에 바탕을 둔 기독교는
국민들에게 차라리 신선한 충격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점차 전통문화를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으며 불교의 운명은 교육받지 못한 계층이나
산간 오지의 비문화권 사람들이 믿는 열등종교로 전락해 버렸다.
아나가리까 다르마팔라는 이런 어지러운 시기에 싱할리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전 생애를 바쳐 불교 중흥운동을 국민 계몽운동과 함께 전개하여 부처님의 위대한 정신을 되살리고
땅에 떨어진 민족적 자긍심을 회복시켜 스리랑카가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근대 독립국가를 이루는 데
정신적 문화적 기틀을 마련한 애국자이다.
그는 또한 인도에서 힌두교도와 지방 토호들의 사유물이 되어버린 불교 성지를 회복하고
인도 땅에 불법을 재건하겠다는 큰 원을 세워 범세계적 불교기구이며 자선단체인「마하보디 협회」와
세계적 불교잡지 「마하보디 저널」을 창설하여 성지 회복의 기금을 모으고 부처님의 법을 세계적으로 포교하였으며
아쇼카 왕 이래의 대 원력 보살이라 불릴 만하다.
또한 그는 카스트 제도로 피폐된 인도와 스리랑카 국민들의 나약하고 게으른 정신에 활력과 창의력을 불어넣고
그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실업학교와 불교 교육기관을 세우기도 한 사회개혁가였다.
마른 나뭇가지에서 새 움이 돋고 꽃이 피는, 생성의 활기찬 교향악을 연주하는 이 좋은 계절에
이 분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은 비록 시간과 공간은 달리 하지만 그 분의 행원(行願)이 지니는 의미가
오늘의 한국 불교에도 매우 실감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 고요한소리(cafe.daum.net/goyohansori), <아나가리까 다르마팔라>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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