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정기용 행복한 건축은 우리 내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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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용건축 사무실 입구에는 우리나라 지도가 모로 누워 있다. 그 지도에는 그가 작업한 곳들이 붉은 점으로 찍혀 있다. 지도 앞에 앉은 정 소장.“ 덕수궁이나 경복궁 같은 고궁에 가면 마음이 편해진다. 좋은 생각을 하게 되고, 나쁜 기억도 다시 해석해 좋은 기억으로 바꿔놓기도 한다.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면 아름다운 생각을 하게 되고, 꿈을 꾸게 된다. 그의 정원인 명륜당에 가면 고요하고 풍요로운 그 무엇이 마음을 평온하게 이끌어준다. 전쟁 기념관이나 희국립묘지 등에 가면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사회가 존재할 수 있음을 돌아보게 된다. 더불어 저 같은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흔히들 ‘과거는 미래’라고 하는 것은 같은 일들이 끊임없이 되풀이되기 때문은 아닐까?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건축이란 마음을 인도하는 매개이니, 진정 행복한 건축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개 건물을 완공한 다음에는 다시 가지 않지만 어린이 도서관만큼은 가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지요. 그 까닭은 무엇인가요?” “건축가는요, 자기가 설계한 집에 가면 결점만 보여요. 잘된 건 안 보여요. 그런데 어린이 도서관에 가면 건물이 안 보이고 아이들이 보여요.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어요. 아이들이 서가에서 책을 뽑아 들고 창가로 가서 열중해서 책 읽는 걸 보면, 뭐라 해야 하나… 그 순간 천지개벽하는 것 같아요.” “천지개벽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그 아이 스스로 교육개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교육에는 아이들의 자율성이 실종되어 있거든요. 공부를 하기 위해서 책을 보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즐겁기 위해 책을 읽는 순간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죠. 그리고 아주머니들에게 ‘(어린이 도서관이 있어서) 아침에 일어나는 게 행복하다’는 소리도 들을 수 있어요. 그곳에 가면 인간의 건축을 체험하는 다른 인간이 행복해하는 걸 눈으로 확인하게 됩니다.” “미술, 건축, 도시계획 등 공부를 많이 하셨는데….” “욕심이 많아서라기보다는 질문에 허기가 져서요. 질문에 대한 답이 없을 때 전공을 바꾼 것 같아요. 그리고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면) 다른 질문이 생겨요. 건축과를 졸업하고 도시계획과를 간 것도 마찬가지예요. ‘왜 이 땅에는 집만 지으라고 했을까? 주거지역, 공장지역 등의 결정은 누가 왜 무슨 근거로 하는 것일까?’ 하는 것을 알고 싶다고 생각했지요. 물론 도시계획과에서 한다는 것을 짐작으로 알지만 ‘나도 모르는 사람의 하수인이 되어서 일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어야 된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시작했어요. 천성이 종속되는 걸 싫어하는 것 같아요. 나한테 제일 중요한 것은 자유로움이에요.” 변화하는 한가운데 있어 행복하다 그의 말을 듣노라면 건축적인 표현을 많이 듣게 된다. ‘건축은 삶을 조직한다’거나 ‘건축을 완성하는 것은 건축가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말이 그렇다. 사전을 찾아보니 조직이라는 말은 ‘짜서 만들거나 얽어서 만듦’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정 소장님 댁은 어떻게 조직되어 있나요?” “저 같은 경우에는 세 가지 정도 버릇이 있어요. 늘 창을 열어두고 살고 가급적이면 좀 비우고 살아요. 어느 집이든 소도구와 잡동사니를 늘어놓은 다음부터는 공간이 제한돼요. 오히려 결정되지 않은 잠재된 상태가 가장 매력적이지요. 그리고 세 번째는 집에 대해 얽매이지 않으려고 해요.” “말씀을 들어보면 창을 중시하시는 것 같아요. 사람이나 집에서 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모든 건축가들이 창에 대해 읊었는데, 내가 생각하는 창은 우리가 말하는 세계, 세계와 나를 이어주는 통로예요. 특히 건물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것은 세계가 압축적으로 그 사람에게 내면화되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 되죠. 사람이 존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계와 관계를 맺는 것이에요.” “정 소장님의 ‘방’에서 보는 창밖은 어떤 세상인가요?” ![]() 10여 년 전, 건축의 미래를 위해 건축가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서울건축학교’의 일원인 승효상(이로재 대표), 조성룡(조성룡도시건축 대표), 정기용 씨가 승효상 건축에 관한 비평서 <감각의 제국>(동녘)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만났다. 왼쪽부터 승효상, 조성룡, 정기용 씨. “특별한 것이 있어요. 거기에는 여러 종류의 풍경이 있어요. 낙산도 있고, 학교 건물도 있고, 아파트도 보이고, 다가구 주택도 있어요. 주택 옥상에서 배추 키우는 아주머니도, 옥상에서 며느리에게 된장 담그는 걸 가르치는 시어머니도 보여요. 사라져가는 한옥에 마지막으로 옷을 해 입힌 수의(비 새는 것을 막기 위해 지붕에 씌운 천막)도 보여요. 창을 통해서 내다보는 풍경은 멀리도 있고 가까이에도 있어요. 그러나 그것들은 한 번도 고정된 적이 없어요. 늘 미세한 변화를 끊임없이 생성해요. 기후 때문에도 그렇고, 사람들이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꿈틀꿈틀 변화하는 서울의 한 조각이지만, 원경부터 근경까지 그 풍경에는 깊이가 있어요. 바로 그렇게 변화하는 한가운데에 내가 있어 행복해요.” 이곳에서 사는 7~8년 동안 그는 비가 오는 날, 눈이 오는 날, 새벽 아침, 늦은 밤, 시시때때로 똑같은 각도에서 바라본 풍경을 카메라로 수백 번 찍었다고 한다. “건축 일을 하면 좋은 점이 무엇인가요?” “여러 종류의 사람과 여러 종류의 세상을 만날 수 있어요. 땅도 만나고, 사람도 만나고, 기계도 만나고, 시대도 만나고, 기술도 만나고.” “지금까지 만난 건축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요?”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가장 무서운 건축주가 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건물 설계를 의뢰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합당한 돈을 지불할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돈만 주는 사람이고, 당신은 그 돈으로 설계를 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설계를 할 수 없어서 당신에게 맡기는 것이므로 이것은 나의 작품이 아니라 당신의 작품입니다’라고 말하는 이분은 아마 소설가여서 작가 정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작가를 가장 잘 부리는 방법은 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임을요.” “행복한 세상은 어떤 세상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제가 어렸을 때였던 것 같아요. 제일 좋은 세상은 앞으로 올 세상이 아닌 것 같아요. 지나간 것 같기도 하고…. 제일 근사하고 행복한 세상은 고르게 가난한 사회인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그냥 즐겁게 살고 싶은데…. 사는 것의 기적을 느끼면서 그걸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러려면 마음을 비우고 사람을 사랑하고 사물을 사랑하고 나무를 사랑하고, 이런 것이 지속되면 좋겠어요.” 그는 지금도 그렇게 보이지만 참 맹렬하게도 살았던 것 같다. ‘참 좋았던 것 같아’라고 기억하는 50대 시절에는 하루를 48시간처럼 썼다. 저녁 10시에 퇴근해 집에서 또 다른 일을 하다 새벽 4시쯤 잠들었다. 약속 시간을 3분 단위로 쪼개 하루에 여섯 번의 미팅을 하던 때도 있었다. 얼마 전 그는 깊은 병을 알았다. 병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선택해 슬기롭게 대처했던 그는 발병에 대해 '육신과 정신이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사건이었다'고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해설자처럼 담담하게 말한다. 그러나 '매일 매일이 기적이고 바람 불고 구름이 지나가고 비 내리는게 우주 쇼'라는 그의 말을 들으며, 하하하,웃을 수만은 없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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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가로써 내가 한 일은 원래 거기 있었던 사람들의 요구를 공간으로 번역한 것이다.
- 건축은 근사한 형태로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섬세하게 조직하는 일이다.
- 내가 생각하는 집은 일상이 반복되는 친숙한 공간일 뿐이다.
- 창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모두 내 집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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